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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이해민선

2018. 10. 27 - 11. 25

그가 찾고 있는 것과 내가 보고 있는 것,
공백이 지닌 무게와 질감에 대하여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본질적인 물음을 떠올리게 했던 것은 한 사람의 그리는 행위가 유독 마음 쓰였던 탓이다. 내가 그의 그림 앞에 처음 섰던 때가 꼬박 오년 전 이맘때였는데, 그는 동네 열 바퀴를 돌아서 그린 풍경에 “물과 밥”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그때는 물과 밥이 어떤 형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금방 지워졌는데, 이 두 개의 단어가 나란히 붙어있는 모양새는 내 몸 어딘가에 조금 오래 남겨져 있었다. 눈인지, 입인지, 머릿속인지, 가슴인지, 어딘지 모를 몸에 자국처럼 남아서, 이 말이 지시하고 있는 실체가 내가 봤던 그의 그림이었는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면서 마땅한 언어의 질감을 찾으려 했던 그의 행위였는지 알고 싶었다. 그의 그림에는 뭐라 단번에 말하기 어려운 질감이 묻어 있는데, 그것은 또한 그가 이름붙이는 언어의 질감과도 닮아 있어서, 과연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림을 그리는 그 한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이해민선은 오래된 그림들을 작업실에 쌓아놓고 혼자만 아는 그림의 속내를 가끔씩 떠올리면서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속사정을 꺼내놓을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말했다. 되게 그리고 싶은 게 있는데 잘 안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고. 그래서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뭔가 바깥에 푹 파여진 데를 장판으로 막아놓은 걸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잘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상상했던 장면이 또 내 머릿속에 빠르게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그리고 싶은 것을 아직 잘 그리지 못하겠다는 말 못할 속사정을 가진 그의 처지가 나를 조용히 괴롭혔다. 푹 파인 땅 위에 장판이 덮여 있는 그 진부함을 못 그려서 할 말을 잃은 그를 지켜보자니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쓸데없이 커졌다. 방마다 가득 쌓아놓은 그림의 덮개를 풀어놓으면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려나. 


그 무렵 그가 작업실에서 그리고 있던 그림은 <금이빨을 잃어버린 자가 찾아온 곳>(2018)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 형상 앞에 불러 세웠을까. 큰 산을 덮고 있는 돌멩이를 그는 얼마나 그린 걸까. 산봉우리에서 바닥까지 굴러 내려온 돌멩이들이 산을 훑는 느린 시선에 자꾸 차인다. 혹은, 저 먼 산봉우리에서 눈 앞 바닥까지 거리만큼의 허공에 그냥 박혀 버린 것 같은 돌멩이의 질감이 성글게 시선을 툭툭 끊어 놓는다. 이해민선은 흑연이 만들어낸 돌멩이의 질감과 그것으로 덮여 있는 텅 빈 산을 그렸고, 나는 그가 그리려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문득 텅 빈 산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 자잘한 돌멩이들의 질감이 산을 그린 것인지 돌멩이를 그린 것인지 모를 어떤 착시적인 순간에 닿았다. 그때, 그러니까 돌멩이와 텅 빈 산이 더 이상 따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질감을 가진 “그림”으로 보이는 순간에, 금이빨을 잃어버린 자가 찾아온 곳이라는 이 장소가 어떤 풍경이 아니라 그림이 놓인 백지로서의 공백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 공허함을 덮을 수 있는 만져질만한 질감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다시, 그 질감은 서로 붙잡고 있는 두 사람의 형상 위에도 얹혀져 어떤 것의 무게로 옮겨진다. <덩어리_8>(2018)에서 드러나 있는 미비한 형상 간의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단단한 운동성과 그 둘의 고립이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언제고 다시 자잘한 돌멩이의 질감으로 흩어질지도 모를 그것과의 일체화된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를테면, 그림의 한 가운데에 이상하게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이 서로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의 형상은 몸에 돌멩이의 질감을 잔뜩 지고 있다. 구부린 등 뒤에, 펼친 팔꿈치 위에, 꿇은 발목 아래에 몸의 일부인 양 머리 같고 주먹 같고 무릎 같은 돌멩이가 지어져 있다. 때문에 어떤 속임수처럼 평평한 요철로도 그림의 질감을 떠맡았던 돌멩이의 구실은, 다시, 살아있는 몸에 각인된 생의 진지한 무게로 전환된다. 금이빨을 잃어버린 사람의 몸에 절박함과 공허함이 교차하듯, 그림 안에서는 파헤쳐진 질감과 응축되어 휘발할 것 같은 서로의 무게가 나란히 공존한다. 금이빨을 잃어버린 사람이 그림 바깥에 있는지 그 안에 있는지 모르게. 여기서, 내가 한참을 보고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게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뻗은 팔꿈치 위로 반듯하게 올려진 과일 하나. 그리고 바로 옆에서 균형을 이루듯 같은 무게로 그려진 돌멩이 하나. 이 뜻밖의 형태가 예상치 못한 곳에 아무렇지 않게 반듯이 놓인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 고립되어 있는 두 사람의 무의미한 행위가 그토록 작은 무게들을 지탱하려 애쓰는 것 같아 몹시 처연하기도 해서 나의 괜한 속내를 뒤적거리게 한다. 그러다가, 나는 이 형상 앞에서 오래 서성였을 그의 뒷모습을 다시 떠올려 본다. 붓과 연필을 번갈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마주잡은 팔꿈치 위에 과일 하나, 돌멩이 하나를 얌전하게 그려 넣기로 한 그의 속사정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가 찾던 곳도 여기였구나 싶다. 그림을 그리려는 자, 그가 찾아온 곳. 그것은, 도무지 알려져 있지 않고, 미비한 힘들이 교차하며, 아무에게나 함부로 들키지 않을, 묵직한 공허함이 짙게 배어있는 “먼 곳”으로서의 장소다. 


이해민선은 그 곳을 “바깥”이라 말한다. 검은 장소,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그는 어떤 실체가 임시 가림막 같은 불완전한 것으로 뒤덮여 있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림에 <바깥>(2018)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말 그대로, 그는 어디 먼 곳의 느슨한 야외 풍경인 양 바깥에 버려지듯 일상의 변두리에서 가끔씩 목격되는 불확실한 실체들을 찾아내 그 질감을 그림에 옮겼다. 그가 그린 것은 질감이다. 어쩌면 내가 종종 그의 그림을 두고 질감을 가진 표면이라 말했던 것이, 그가 그린 그림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형상의, 일상의, 세계의, 힘의 여분이 밀려나간 바깥쯤 되려나. 이해민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데도 아닌, 그래서 시선으로부터 소외된 사물과 풍경이 가지게 되는 연약한 질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그림 안에 들인다. 시선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바깥”의 질감은 이내 그림 표면의 질감으로 전환된다. 작품 제목 옆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면 천 위에 아크릴 채색”이라는 이 솔직한 표현은 회화에서 형상의 환영과도 같은 표피적 재현의 빈약함을 말해주면서도, 동시에 표현될 수 없는 형상의 물질적 실체가 천 위에서 아크릴 물감과 서로 적응하여 얻어낸 사유의 표피임을 또한 알려준다. 따라서 그림의 표면이자 형상의 표피이기도 한 물질의 질감은 바깥의 풍경을 관찰해 온 작가의 말할 수 없는 사유와 닮아 있다. 


나는 이제, 그가 그린 그림을 다시 본다. 두께 없는 흰 색 천이 안으로 감추고 있는 실체에 대해 머릿속에 상상하려던 것을 멈추고, 나는 면 천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형상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고인 물, 죽은 나방, 새 똥, 빗물 자국, 주름에 쌓인 먼지, 흐르다가 멈춘 얼룩 등 희미한 존재의 상이한 질감들이 흰 천의 공허함을 채우고 있다. 그의 사유는 안으로부터의 혹은 바깥에서의 소외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소외된 형상들의 질감과 또 그 질감의 무게를 그림에 옮겨 오기 위해, 그는 드러나지 않은 실체와 그림으로부터의 표피적인 고립을 모두 자처한다. <강풍>(2018)에는 그러한 정서가 짙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강풍이 없다. 절정도 없고, 다만 강풍에 맞서는 어떤 침묵과도 같은 묵직한 제스처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내게 작년 개인전에서 봤던 <절정 없는 곳: 포즈>(2017)를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바깥으로 밀려나 자리 없는 존재들의 구체적인 실존을 공적인 발화의 힘과 견주어 강렬한 질감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여기 있다”라는 구호는 우리가-여기-있다는 절대적인 실존에 대해 발언하는데, 이해민선은 그러한 공적 발언을 흰 색 현수막의 가느다란 끈과 과도한 임시방편의 구멍들로 지탱시킨다. 말의 실체가 무엇인가 보다는, 어쩌면 강풍이 불 때 그 말 자체를 지탱시키기 위한 소외와 고립으로부터의 주체적인 자립을 시도하는 셈이다. 


맨 살갗이 드러난 것 같이 흙과 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산을 배경으로 “바깥”의 풍경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덩어리_0>(2018) 연작은 다시 형태의 무게와 질감을 오가며 그림의 표면을 만들어내는 한 사람의 움직임을 환기시킨다. 동네 열 바퀴를 돌아 “물과 밥”의 찐득한 질감을 가진 바깥 풍경을 그렸던 때처럼, 이해민선은 말과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임시적인 풍경들을 찾아내 단단한 질감을 가진 그림으로 옮겨다 놓는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그가 늘상 마주하고 있는 임시적인 풍경들의 표면을 닮아 있기도 하다. 지금 나는, 오래 전부터 봐왔던 <동네 열 바퀴>(2012-2013)나 <무생물 주어>(2016), <성미산에서 온 성미>(2016-2017) 연작처럼 종이에 옮겨진 회화적인 질감들이 자립해서 존재하는 방식을 떠올리고 있다. 작고 어중간하게 그려진 그림들은 매번 벽에 걸거나 액자에 넣어두지 않고, 뒤에 나뭇가지와 스티로폼 같은 임시적인 지지체를 붙여 자립하듯 한데 세워 설치됐다. 그건 꽤 의미는 행위처럼 보였는데, 작고 허약한 그림 뒤의 큰 공허함을 묵직하게 견뎌내는 그림 표면의 무게감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세 점의 <덩어리_0> 연작에서 그러한 기억을 떠올렸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의 맨 살갗처럼,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덮개들 위로 묵직하게 올려 있는 작은 진흙 덩어리와 자잘한 돌멩이들의 질감이 다른 형상들과 견주어도 모자람 없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안소연(미술비평가)

 

 

What she is looking for and what I am seeing, 
about the weight and the texture of a void

I think about what is a painting. What reminded me of this essential question was a prolonged thought about the drawing act of this person. It was as many as five years ago when I first stood in front of her painting, and she explained about the landscape she painted by walking around the neighborhood about 10 times, using the words ‘Water and Steamed Rice'. Back then, water and steamed rice hit my mind as certain images and then disappeared. The shape showing how these two words are closely attached to one another has lingered on in some part of my body for quite a long time. They have remained on my body – be it my eyes, mouth, head or chests – as marks, so I wanted to know if the object the words referred to was the painting I saw or her act of finding the proper linguistic texture while painting. Her paintings imbue an inexplicable texture, which also is similar with the texture of the language she names, so in thinking about what painting is, it is inevitable for me to imagine the image of the very person doing the painting. 


When I first visited her studio, Leehaiminsun seemed to try to find ways to reveal hidden thoughts by stacking old paintings in her studio and sometimes recalling her inner thoughts in paintings that nobody except for her knew about. She told me that some pictures are extremely hard to paint despite her strong will to do so, and I asked her what they were. She said she wanted to paint a scene where a deep hole outside is covered with a mat in vain. A scene that I envisioned by listening to the words swiftly popped up and vanished, but her subtle situation of not being able to paint well what she wanted to paint silently lingered on in me. My desire to see the unborn painting unnecessarily grew big as I watched her being lost in words for not being able to paint the cliché of a mat covering a deep hole. Would she find the way to do so once the layers of paintings she has accumulated in each room? 


The painting she worked on in her studio back then was titled <Where the man who lost his golden tooth headed for> (2018). What was it that made her stand in front of this image? How many times did she paint the pebbles covering the big mountain? The pebbles that fell down to the ground right before me from the distant peak are constantly kicked off from slow viewing of the mountain. The texture of pebbles seeming to have been stuck in the air to the extent of the distance between the distant peak to the ground before me immaturely cuts off my view. Leehaiminsun painted the texture of pebbles made by graphite and a big empty mountain covered with it. I closely look into what she tried to paint. And then, I encountered a somewhat illusionary moment of being uncertain if the texture of small stones covering the surface of the big empty mountain is the mountain itself or the pebbles. In that moment – of seeing that the pebbles and the big empty mountain are seen as a ‘painting’ with a single texture without being distinguished from one another – it seems that this place which the man who lost his golden tooth would head for must have been an empty space as a blank sheet of paper with the painting one instead of being a landscape. Maybe she needs some tactile texture to cover the emptiness. The texture is placed on the image of the two people that hold one another to be transferred into the weight of something. The firm motion that cannot be separated among vague images shown in <The mass_8> (2018) and a sense of weight generated from the two’s isolation hints at the presence that might be integrated with what might scatter because of the texture of the small pebbles at any time.


For instance, the image of two people holding each other – as if they are strangely isolated in the middle of the painting – is replete with the texture of pebbles on the body. Pebbles looking like a head, a fist or a knee are ingrained on the crunching back, on the stretched-out elbow and below the ankle from bent knees. The purpose of the pebbles being accountable for the texture of the painting even with the flat rumble strips – like a trick – converts into a serious weight in life ingrained in the living body again. Just like the crisscrossing of desperation and emptiness on the body that lost his golden teeth, the dug-out texture and the mutual weights being condensed to the point of becoming volatile coexist side by side in the painting – so that it is not explicitly shown if the person that lost his golden teeth is either outside or inside the painting. There was one thing I could not recognize even after a long glimpse at it – a piece of a fruit nicely placed on the elbow stretched out between the two people and a pebble painted in the same weight as if to strike a balance next to it. Looking at this unexpected form neatly placed in an unexpected place, I feel that the meaningless act of the two people that are isolated try so hard to sustain such tiny weights is sorrowful and even emotional. Then, I recall the back of the artist that must have paced around in front of the image, endlessly repeating the act of holding and putting down a brush and a pencil, and deciding to gently add a fruit and a pebble on the elbow mutually held by the two people, and contemplate on her intention. She must have been looking for this place – a place she visited as an artist, and a ‘distant’ place that is unknown where vulnerable forces intersect with heavy emptiness deeply embedded which is not easily noticeable. 


Leehaiminsun calls the place “outside.” She painted a picture covered with something incomplete – like a temporary cover – in an unidentified black space, and gave a title of <Outside> (2018) to the painting looking like nothing. She found out uncertain objects that are sometimes witnessed in the outskirts in her daily life – as if they are thrown away outside seeming like a distant and loosened scenery, and put the texture on her painting. What she painted was the texture. I mentioned the surface with a texture by referring to her paintings maybe because it must have been an “outside” where the residual power of the image, daily life and the world is pushed aside. The artist pays attention to the vulnerable texture embedded by isolated objects and scenery from a view, being nothing or nowhere. She invites it into her painting. The texture of the “outside” neglected from a view is converted into the texture on the surface of the painting. “Acrylic, color on cotton” serving like a tagline to her work – being such a candid expression – conveys the vulnerability in superficial representation like the illusion of an image in the painting. It also shows that it is the skin surface gained from reasoning as the physical being of the image that cannot be expressed adapted itself to the acrylic paint. Therefore, the texture of the paint being the surface of the painting and that of the painting is analogous to her inexplicable reasoning as an artist that has observed the outside scenery. 


Now, I look at her painting again. I thoroughly look into each and every image painted in acrylic paint on cotton cloth, no longer envisioning what is in my head on the object hidden in the white cloth that has no thickness. The diverse textures of vague beings – enclosed water, dead moths, bird poo, raindrop marks, dust filling up wrinkles and smudge from something falling down – fill up the emptiness of the white cloth. Her reasoning is close to alienation from within or outside. She is willing for superficial isolation from unidentified objects and the painting in order to bring in the texture of the isolated images and the weight of the texture to her painting. <Strong wind> (2018) has a strong sentiment as such. Her painting actually has no strong wind – no climax but with repetitive heavy-toned gestures like some silence against the strong wind. This work reminding me of <A Place without Climax : The Pose> (2017) I saw from her solo exhibition last year reveals the specific existence of the things that have no place to stay by being pushed to the outside is depicted in the strong texture in a contrast with the power of public utterance. Utterance is made from the chant “We are here” on the absolute existence of “We, are, here” and the artist sustains the public utterance with thin strings and stopgap holes on the white banner. It is an attempt for self-driven independence from alienation and isolation to sustain the wording itself against a strong wind, instead of focusing on the truth of the words. 


The <The mass_0> (2018) series positioning in the middle of the “outside” landscape against a mountain with nothing except for soil and stones – as if to expose the bare skin – is a reminder of a person’s movement who seeks to create the surface of the painting be moving back and forth the weight and the texture of the form. Just like when she painted the outside scenery that has sticky texture of “water and rice” by walking around her neighborhood for 10 times, the artist places the temporary scenery with no words or view reaching it onto the painting with a firm texture. And yet, her painting is similar with the surface of temporary scenes she always faces. Now, I am reminded of the way in which pictorial textures placed on the paper – as in <Turning around tenth time in town> (2012-2013), <Inanimate Subject> (2016) and <Sungmi from Sungmi Mountain> (2016-2017) – exist through self-sufficiency. The small or ambiguously sized paintings were installed to stand still without hanging on the wall or being put in a frame each time, as if to show their independence – by attaching temporary supports like tree branches or Styrofoam on the back. It looked fairly meaningful as an act because I could empathize with the weight of the surface of the painting that bears with the significant emptiness behind the small and vulnerable paintings. Such a memory came to mind from the three pieces in the series of <The mass_0>. Just like the bare skin of unidentifiable emptiness, the texture of the small soil or the mass and small pebbles placed on the covers that reveal nothing is explicitly shown even being compared with other images. 

Ahn Soyeon(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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