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점점
Spots


김을, 김학량
더 소소
2024. 4. 26 - 5. 24

 

전시를 열면서 ​

 

​김학량

 

    매화 피었다 진 뒤로 개나리 민들레 진달래 등속이 나서고, 요즘 망우리엔 산벚나무 꽃그늘 저쪽 양달에 남산제비꽃이 새초롬하겠네. 복사꽃은 여기저기서 분홍빛으로 생색을 내고, 하마 자두꽃도 새하얗게 일어 그윽한 향기를 머금는다. 때는 봄. 기지개 켜며 무언가 저지르기 좋은 계절. 전시야 지난 여름에 이미 정해는 놓았지만, 봄이 꽃을 따라 닥치니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새삼.

    우리 두 사람이 사람을 알고 사람을 이루는 이런저런 내막도 알아차리며 벗해 오는 동안, 사람들 눈에 얼른 뜨이도록 전시를 통해 서로 어울린 적이 드문 가운데, 퍽 오래 전부터 2인전을 한 번 하자고 말은 여러 차례 있어왔다. 그러던 차에 호시절 만나 비로소 어우러지게 된 것이다.

 

    얼핏 보아서는 미술가로서 출발한 이후 밟아온 궤적이나, 취향이니 이념이니 목표니 하는 것이 상통하거나 교차하는 지점을 딱히 꼬집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견주어가며 보면 서로 어울릴 만한 구석도 없지 않고, 서로 달리 보일 만한 점도 많으니, 둘이 어울리기에 조건이 그럴싸하다.[1]

 

    제목이 “점점.” 이 말은 부사·명사·형용사로 두루 쓰인다.[2] 어떤 품사로 써도 모두, 가만 있는 듯하지만 은근슬쩍 움직거리는 형세를 잘 나타내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풀씨든 구름이든 물이든 사람이든 먼지든, 중생만물 모든 것이 저도 모르게 세월에 실려 흐른다. 그러니 언제든 어디서든 무언가와 만났을 때 상대를 찬찬히 살피고 쓰다듬고 귀 기울이면 거기서 세월의 냄새와 소리와 욕됨과 상처와 희열과 번뇌 같은 걸 감지하리라. 예술이라는 도깨비짓·미치광이짓도 그러한 점에서 세상에게서 무용지물無用之物로서 그 쓰임새를 얻을 것이고. 점, 점.

 

    같은 사람이 벌인 일이라도 그때그때 숨결이 다를 것이다. 가슴 벅차올라 몸을 젓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쓰기도 하고 울적해서 긋기도 하고 그저 무덤덤히 짓거나 쌓아가기도 하고 외로워 몸부림 삼아 그리기도 하고 산산이 흩어진 넋을 다스리느라 매만지기도 하고 묻어두기가 도무지 되지 않는 회한이 사무치어 붓을 적시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만상萬象 사이를 세월처럼 흐르며 바람을 새길 뿐이다. 점, 점.

 

― 용띠 해 새봄에, 용띠 김학량 적음

 

[1] 다만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이마 맞대고서 무언가를 애써 도모하거나 하지 않기로 하였다(이따금, 순간순간, 아쉽기도 하다, 실은).

[2] 점점1 (漸漸)  [부사] 조금씩 더하거나 덜하여지는 모양. 점점2 (點點) [명사] 1. 낱낱의 점. 2. 점을 찍은 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양. 점점하다 (點點하다) [형용사] 점을 찍은 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사전을 뒤져보면 저렇고, 영어 제목으로는 ‘spots’를 쓰기로 했다. 몸에 난 점 또는 반점. 날 때부터 있거나, 육신의 사태를 겉으로 내보이는 징후로서 나중에 생기거나 한다. 생겼다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하고, 사라졌다가는 어느새 또 나타나기도 하고. 어쩌면 세상은 점의 그물일런지도 몰라.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