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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행 無行
 
배종헌
갤러리 소소
2023. 11. 4 - 12. 3

 

배종헌의 무행無行

- 이미 완성된 그곳으로의 초대

 

전희정(갤러리 소소)​

 

 

    무행(無行). 아무데도 가지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럼에도 그곳에 있는. 배종헌은 자신의 근작을 이렇게 명명하고 전시제목으로 올렸다. 그가 수개월의 해외 레지던시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익숙한 그곳에는 풀들이 자라나 있었다고 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잡풀의 씨앗들이 자리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 뿌리를 박아 제멋대로 자란 모양을 흐뭇하게 바라본 그는 그 광경에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것은 <콘크리트 정원>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원>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곧 <무행>이 되었다.

    배종헌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는 창작을 위해 길을 떠나거나 멀리 시선을 던지지 않고 익숙한 곳을 걸으며 가까운 곳을 유심히 바라본다. 골똘히 바라보며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가는 그의 눈에는 온갖 것들이 보인다. 그것은 보일 뿐만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생성하기 시작한다. 그가 그렇게 발견한 장면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다양해서 기록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연구의 모양을 갖출 때도 있으며 시가 되기도 한다. 조형적으로는 사진, 영상, 설치, 회화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든다. 규정하기 힘든 자신의 작업을 그는 끊임없이 정리하고 연결하여 체계를 갖추어나간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그만의 방식이다.

    이렇게 예술에 대한 생각과 행위를 멈추지 않는 그가 이번 회화 작품에 특별히 ‘무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가 찾는 아름다움의 어느 일면을 주목하게 한다. 오래된 콘크리트의 균열에는 이름 모를 꽃이 피고, 누구도 가꾸지 않은 내버려둔 땅은 정원이 된다. 어느 미장이가 솜씨를 발휘해 마감한 담벼락에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미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멘트 벽의 온갖 생채기와 벗겨진 페인트, 쌓인 먼지에는 아득히 먼 산수가 그려진다. 사람이 만든 것과 자연이 두고 간 것, 시간이 만들어낸 것,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생겨난 아름다움이 자리를 잡아 그곳에 있다. 배종헌은 ‘무행’이라는 이름으로 그 아름다움을 기리는 것이다.

    그러나 길가의 벽을 보는 무심한 눈에는 그저 오래된 시멘트 덩어리와 갈라진 균열, 마구 자란 잡초만이 보인다. 오직 그것을 보고 듣는 배종헌만이 그렇게 주장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든다. 프레임의 크기를 면밀히 결정하고, 속색과 겉색을 미리 결정해 겹겹이 물감을 올리며, 적합한 도구를 찾아 손에 맞게 길들여 화면에서 형태를 긁어낸다. 테두리까지 곱게 칠한 후 제목을 새기는 마무리까지 깔끔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미를 발견하고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무행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행(行)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배종헌은 작품의 원천이 되는 균열과 먼지, 시멘트 거푸집흔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완성되어 그곳에 있는 아름다움임을 천명한다.

    결국 우리는 그가 가리킨 자리에서 무행의 미를 찾는 한 예술가의 행을 본다. 그리고 그 행을 좇아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한 자락을 본다. 배종헌은 여행이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며, 그렇기에 일종의 예술적 체험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의 무행無行은 미의 사건을 만들기 위한 행行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모든 예술작업은 이미 완성된 아름다움의 공간, 예술의 사건으로 우리를 부르는 초대장이다. 초대된 우리는 잠시 그의 눈을 빌린 여행객이 되어 그가 만든 예술의 정원을 거닐어 본다.

 

      

콘크레투스의 벽

배종헌

 

자라는 벽이 있어

 

돌이 자라

풀이 자라

나무가 자라

개울의 강과 바위의 언덕도 자라

 

꿈꾸는 돌

춤추는 풀

노래하는 나무

거니는 강

생각의 언덕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무엇이 되

함께 자라는 벽이 있어

 

 

늙은 벽이 있어

 

돌은 바위 되

풀은 들판 되

나문 숲이 되

강의 바다와 언덕의 산은 늙어

 

더럽혀진 바위

할켜진 들판

부딪는 숲

마모의 바다

박락의 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억을 더듬는 회복의 주름

함께 늙은 벽이 있어

 

촉촉한 새벽이 깨어나

 

Jongheon Bae’s “Trying Nothing”
-An invitation to a place that is already complete.

                                                      

Chun Heejung (Gallery SoSo)

 

  Trying Nothing. Going nowhere, doing nothing. Yet, something still exists. This is how Jongheon Bae named his recent works and exhibition. When he returned to his house after several months of staying at an overseas artists’ residency, he found his home covered in grass. He liked the spontaneous image of the wild grass, with its seed taking root everywhere and growing. Then he named the scene Concrete Garden. The title expanded from Concrete Garden to A Garden Without Doing Anything. Soon, it became Trying Nothing.

  Bae’s work begins in this way. He walks through familiar places and carefully observes the nearby environment rather than embarking on a journey or casting his eyes over distant places. Through his diligent observations and continuous thoughts, his eyes capture all sorts of things. These things begin to tell stories as soon as they appear. He unfolds the images and the stories he finds in diverse forms, such as documents, research, and poetry. His visual practice spans various genres, including photography, video, installation, and painting. He continuously defines and weaves his indescribable works to structure, which is Bae’s way of seeking beauty.

  Bae, an artist who thinks and acts constantly, titled his recent painting Trying Nothing to emphasize the aspect of beauty he has long pursued. Nameless flowers bloom among the cracks in the aged concrete, turning abandoned land into a garden. The craftsmanship of an unknown mason who built the wall left a clean aesthetic on the surface. The various marks, peeled paint, and accumulated dust on the cement wall draw a distant landscape of mountains. The stories of what humans have created and what nature has left behind pile up over time; all of these layers accumulate, and beauty naturally emerges from them. Bae honors this beauty in the name of “Trying Nothing.”

  However, to the casual glance of those passers-by, the wall might appear as weathered and cracked chunks of concrete with overgrown weeds. Only Bae, who notices and cares about the marks, believes in their beauty and takes the time to make them into art. He meticulously decides on the size of the frame, pre-determines the base color and layering color to cover the surface, finds the right tool and trains it to fit in his hands, and carves figures out from the surface. After neatly painting the edges, he engraves its title as a finishing touch. Discovering beauty in things that initially had no meaning and transforming them into art is the very essence of ‘trying’ rather than ‘trying nothing’. Still, Bae displays the sources of his work, such as cracks, dust, and the trace of cement mold, to clarify a beauty that is already completed as it is, without doing anything.

  In the end, we will discover the artist's journey in pursuit of effortless beauty as guided by the artist. Following his trail, you come to see a glimpse of the beauty that he believes in. Bae considers traveling an event beyond the ordinary—a kind of artistic experience. Could his “Trying Nothing” be an action that leads to aesthetic possibilities? If so, his oeuvre can be an invitation to a space of perfect beauty and artistic events. As guests, borrowing the perspective of his eyes, let’s wander through the garden of art Bae has created.

The Concretus Wall

Jongheon Bae

Some walls grow

 

Pebbles grow

Grass grows

Trees grow

The stream’s river and the rock’s hill grow

 

Dreaming pebbles

Dancing grass

Serenading trees

Wandering streams

The hill of thoughts

 

No need for effort

It naturally evolves into something

Some walls grow together

 

 

There is an old wall

 

Pebbles grow into rocks

Grass grows into fields

Trees grow into a forest

The river’s ocean and the hill’s mountain grow old

 

Polluted rocks

Clawed grass

Striking forest

Worn-out ocean

Peeled off mountain

 

No need for effort

Wrinkles of cure that embrace memories

Some walls grow together

 

A damp dawn is awak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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