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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원이 이인현을 만났을 때
 
박기원, 이인현
​류병학, 소소 오리지널 기획

차(茶) 스튜디오
2021. 8. 1 - 8. 31

                                                                            박기원이 이인현을 만났을 때

 

                                                                                                                                                                             류병학 미술비평가

지난 6월 22일 나는 인천을 방문했다. 왜냐하면 박기원 작가가 “인천아트플랫폼 부근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마련했다”면서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아트플랫폼을 가로질러 한국근대문학관을 지나 신포로 15번길 58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2층 백색 건물이 있었다. 2층 건물 외벽은 백색 외장 타일들로 정갈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그 건물은 ‘박기원 스타일’ 건물이었다.

그 심플한 2층 건물은 요란한 컬러로 출력된 에어 간판이 있는 로쥬모텔과 붉은 중화요리 간판이 있는 태화관(泰和館) 사이에 위치해 단아하게 보인다. 물론 박기원 작가의 스튜디오에도 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층 유리창에는 썬팅지에 차 ‘다(茶)’ 자를 출력하여 부착한 간판(?)이 있었다. 박기원 작가는 그 건물을 ‘차 스튜디오(CHA studio)’라고 명명했다.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인천아트플랫폼이 조성되기 전, 20여년 전쯤에 저는 인천 만수동에 작업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 년에 한두 번 현재 ‘차 스튜디오’ 주변을 산책한 적이 있었지요. 당시에는 빈집들이 사이사이 많이 있었고, 주변 관리가 되지 않아 분위기는 썰렁했지만 어떤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었습니다. 2017년 8월 초 무렵, 우연히 2층 건물이 부동산 매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어요. 건물의 위치가 좋은 것 같아서 부동산중개인과 내부를 보았는데, 내부는 폐가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건물 앞쪽 거리 모습이 구도시의 소박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건물의 위치만 보고 무리해서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중에 수리해서 작업실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플랫폼 전시도 보고 한적한 주변에 산책하기도 좋을 것 같았어요.”

차 스튜디오(CHA studio)

건물 1층 유리창에 썬팅되어 있는 ‘다(茶)’ 자를 보면 낡고 빛도 바래있다. 따라서 ‘차 스튜디오’ 건물이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박기원 작가에게 ‘차 스튜디오’의 역사에 관해 물었다. 박 작가의 답변이다.

“건물 등기를 보니 1955년부터 건물의 역사가 기록되어있더군요. 이 건물의 소유자는 많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1976년 중국인 범계란 씨가 계속 소유하다가 그의 아들 강학지 씨에게 상속하고, 그는 2014년 11월 인천 연수구에 거주하는 최성경 씨에게 매도했습니다. 당시 건물 1층은 옛날에 중국 차(茶)와 중국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를 ‘금교백화(金撟百貨)’ 상호로 운영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층에는 건물주인이 거주했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차 스튜디오 앞쪽에 지금도 작은 ‘금교백화’ 점포가 있어요. 옛날 언젠가 가게를 옮긴 것 같더군요.”

박기원 작가는 지금의 ‘차 스튜디오’를 2017년 구매했다. 따라서 ‘차 스튜디오’는 이미 5년이 된 셈이다. 박 작가가 건물을 구매할 당시 건물 외부와 달리 내부는 폐가 수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건물 내부를 보수했는지 궁금하다. 그 점에 관해 박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저는 건물을 사고 자금이 부족해서 2년 동안 천천히 돈이 생기면 한가지씩 수리를 해나갔습니다. 건물 내부는 외부와 달리 너무 손상되어 보존이 불가능한 상태였지요. 그래서 저는 내부의 모든 것은 제거하고, 천장 쪽 굵은 서까래와 집의 4 벽체만 남겨두고 최소한의 상황에서 보수를 마무리했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차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차 스튜디오’ 내부는 언 듯 ‘알몸’을 들어낸 야생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분께서 공간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본다면, 박 작가가 내부공간을 세심하게 보수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박기원 작가는 2층 일부 바닥을 제거하여 1층에서 2층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개조해 놓았다. 따라서 여러분이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면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여러분이 건물 내부 벽면들로 한 걸음 들어서면 건물의 역사를 오롯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흔적들을 남겨놓았다.

만약 여러분께서 1996년 가인화랑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움직임(Move)》에서부터 2019년 313 아트 프로젝트에서 개최된 그의 개인전 《연속(Continuity)》을 모조리 조회해 본다면, 그가 작품의 중심에 관객을 둔 설치작품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의 눈에 텅 빈 ‘차 스튜디오’는 한 마디로 관객을 기다리는 일종의 ‘작품’으로 보였다. 그런데 박기원 작가가 ‘차 스튜디오’를 관객을 기다리는 ‘전시장’으로 내놓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19년 건물 수리가 끝나자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10주년기념전인 《오버드라이브(Overdrive) 2009-2019》를 위해 공간 대관을 할 수 있느냐는 문의였지요. 그래서 2019년 가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차 스튜디오’를 대관하여 전시장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이곳에서 어떤 전시를 할 수도 있겠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별다른 계획 없이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상태입니다.”

나는 ‘차 스튜디오’ 가운데 있는 출입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박기원 작가와 이인현 작가 그리고 소소 갤러리 금혜원 대표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러니까 지난 6월 12일 늦은 저녁 박기원 작가가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당시 박 작가는 나에게 이 작가와 금 대표도 함께 있으니 동부이촌동으로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귀가하고 중이라 다음 기회에 만나자고 답변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6월 22일 박기원 작가 스튜디오에서 만난 것이다.

동부 이촌동 모임 당시 소소 갤러리 금혜원 대표는 청계천에 위치한 모 건물을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단다. 금 대표는 박기원 작가와 이인현 작가에게 청계천의 모 건물에서 2인전 개최를 제안했었다고 한다. 그들은 금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단다. 그런데 이후 여러 사정으로 건물 사용이 미뤄지게 되었다.

나는 박기원 작가에게 올해 ‘차 스튜디오’ 일정을 물어보았다. 박 작가는 ‘차 스튜디오’를 9월부터 12월까지 인천지역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위해 전시공간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소소 갤러리의 청계천 프로젝트였던 박기원 & 이인현 2인전을 ‘차 스튜디오’에서 8월에 진행하는 것을 제안했다. 모두 나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런데 차 스튜디오의 2인전을 8월 1일 오픈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우리는 2인전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일주일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7월 5일 우리는 차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일단 전시 컨셉을 잡았다. 그리고 각자의 전시작품도 선정했다. 물론 우리는 차 스튜디오의 1층과 2층에 각자의 작품을 어떻게 연출할지도 상의했다. 또한 우리는 전시타이틀에 대해 논의했다. 여러 전시타이틀이 후보에 올랐다. 나는 차 스튜디오에 전시될 박기원과 이인현의 작품들을 머리 속에 떠올려보았다. 그들의 작품이 서로 티격태격한다.

이인현의 일명 ‘회화의 지층’ 시리즈는 스밈과 번짐 그리고 두께라는 특성을 지닌다. 여기서 말하는 ‘두께’는 캔버스의 ‘측면’을 뜻한다. 이인현은 기존의 회화가 ‘정면의 회화’였다면서 그동안 은폐된 ‘회화의 측면’을 폭로한다. 반면 박기원의 일명 ‘넓이’와 ‘수평’ 시리즈는 캔버스보다 최소한의 부피감을 지닌 한지를 사용한다. 이인현은 스밈과 번짐을 위해 적잖은 기름(turpentine)을 사용하는 반면, 박기원은 기름기를 쏙 뺀 유화물감으로만 한지에 그린다.

언 듯 보기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박기원과 이인현의 작품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1989)가 떠올랐다. 나는 박기원 & 이인현 2인전 전시타이틀로 ‘박기원이 이인현을 만났을 때’를 제안했다. 그들은 나의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우리는 8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차 스튜디오’에서 박기원 & 이인현 2인전 《박기원이 이인현을 만났을 때》를 전시하기로 했다.

My love speaks like silence

내가 그동안 만난 박기원과 이인현의 작품은 명료하면서도 절제된 스타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놓았다. 그들은 현실에 달콤한 판타지를 적절하게 버무려낼 줄 알았다. 물론 달콤한 표면의 이면에는 쌀벌한 노동이 녹아 있다. 그들은 탁월한 균형감각을 통해 관객을 그들의 작품세계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졸라 많은 지뢰가 깔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겁도 없이 지뢰밭으로 걸어 들어간다.

박기원과 이인현은 언제 어디서 만났을까? 1993년 이인현은 가인화랑에서 개인전 《회화의 지층(Lepisteme of Painting)》을 열었고, 1996년 박기원은 가인화랑에서 개인전 《움직임(Move)》을 개최했다. 지난 6월 미팅 때 박기원은 1993년 가인화랑에 전시된 이인현의 독특한 회화인 일명 ‘회화의 지층’ 시리즈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인현은 1996년 가인화랑의 전시실 벽면들을 모조리 옥색 반투명 플라스틱(FRP)판으로 부착해 놓은 박기원의 작품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그들이 가인화랑에서 만난지 28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3년간의 간격을 두고 서로 작품만 보았을 뿐이다.

물론 박기원과 이인현은 이후 그룹전을 통해서도 서로 만났다. 2014년 소소 갤러리는 기획전 《러브 마이너스 제로(Love Minus Zero)》와 《오버 노 리미트(OVER NO LIMIT)》에 박기원과 이인현을 초대한다. 물론 당시 기획전들은 박기원 & 이인현의 2인전이 아니라 4인전(김형관, 박기원, 박미현, 이인현)이었다. 《러브 마이너스 제로》는 7월 17일부터 8월 17일까지 전시되었고, 《오버 노 리미트》는 9월 4일부터 10월 5일까지 전시되었다. 따라서 그 두 기획전은 연달아 열린 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기원은 소소 갤러리의 기획전 《러브 마이너스 제로》에서 설치작품과 회화작품을 전시했다. 그는 1층 전시장 바닥에 알록달록한 솜뭉치인 클로스 볼들(cloth balls) 수천 개로 가득 채운 설치작품 <그라운드(Ground)>(2014)를 선보였다. 흥미롭게도 그의 <그라운드>는 어린이 놀이방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관객은 마치 아이처럼 화려한 컬러의 클로스 볼들이 가득 채워진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관객은 ‘작품을 밟을 수 없다.’ 그렇다! 그것은 일종의 ‘미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미끼’일까? 혹 그것은 ‘중성적인’ 전시공간을 ‘특별한’ 공간으로 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관객이 전시장 바닥에 수천 개의 컬러 볼들로 가득 찬 것을 직접 본다면, 전시장의 바닥과 벽면들이 완전하게 구분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전시공간의 특성을 새삼 보게/알게 된다. 이를테면 관객은 바닥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클로스 볼들로 인해 소소 갤러리만의 전시공간 특성을 보게/알게 된다고 말이다. 당시 박기원은 비닐에 크기가 같은 25개의 각양각색의 클로스 볼을 담아 사인과 함께 판매하기도 했다.

박기원은 소소 갤러리 1층과 2층 사이의 전시공간에 10점의 <넓이(Width)>(2010-2012) 시리즈와 한 점의 <넓이>를 전시했다. 그의 ‘넓이’ 시리즈는 종이 위에 색연필과 오일스틱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것은 언 듯 보면 마치 기하학적인 그림처럼 보인다. 만약 당신이 그의 ‘넓이’ 시리즈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면으로 분활돤 부분들이 수많은 선들로 형성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넓이’ 시리즈는 ‘달콤 쌀벌한 회화’라고 할 수 있겠다.

Looking awry

자, 이번에는 소소 갤러리의 기획전 《러브 마이너스 제로》에 전시된 이인현의 작품들을 보도록 하자. 이인현은 1층 전시장 벽면에 <회화의 지층_再生>(2014)을 전시해 놓았다. 그것은 정사각형(40x40cm)의 종이에 둥근 형상을 찍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얼룩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그것은 마치 둥근 커피잔 밑에 묻은 커피가 잔을 들어내자 종이에 찍힌 것처럼 보인다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관객이 이인현의 판화를 정면이 아니라 우측에서 삐딱하게 본다면, 흥미롭게도 이인현의 작품 안에 박기원의 작품이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머시라?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 안에 박기원의 어떤 작품이 담겨 있느냐고요? 조금 전에 지나가면서 보았던 박기원의 <그라운드>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 안에 알록달록한 클로스 볼들이 담겨 있다고 말이다.

 

뭬야? 어떻게 박기원의 <그라운드>가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 안에 담겨 있느냐고요? 이인현의 판화는 유리 액자에 넣어져 있다. 따라서 박기원의 <그라운드>가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을 넣은 액자의 유리에 반사된 것이다. 그런데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 안에 박기원의 <그라운드>가 담겨 있다는 시각은 거꾸로 박기원의 <그라운드>가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 안으로 침범한 시각으로도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인현은 소소 갤러리 2층 벽면에 2점의 <회화의 지층_再生>(2014)을 전시했다. 그것은 가로가 유난히 긴 직사각형(120x360cm)의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작업한 작품들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직사각형 캔버스의 가운데를 기점으로 아래 부분만 ‘딥블루(Deep blue)’ 유화물감으로 그려놓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딥블루’는 캔버스 ‘피부’에 ‘발라놓은(그려놓은)’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스며들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따라서 ‘딥블루’에는 작가의 손맛을 찾아볼 수 없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언 듯 보기에 망망대해(茫茫大海)처럼 보인다. 물론 아득한 수평선에 섬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한 형상도 보인다. 그것은 유화물감에 테레핀을 섞어 물감을 살짝 번지게 하여 생기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번짐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바탕칠하지 않은 매우 민감한 ‘생살(생천)’에 작업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작업 도중에는 어떤 의미에서 절대로 쉴 수가 없다”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한 시간 이상 고도의 육체적, 정신적 긴장이 요구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인현은 유난히 기다란 <회화의 지층_재생> 두 점을 나무기둥들 뒤에 설치해 놓았다. 말하자면 그는 벽면으로부터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설치된 나무기둥들이 있는 뒤편에 작품들을 설치해 놓았다고 말이다. 한 점은 두 개의 나무기둥 뒤편에 설치해 놓았고, 다른 한 점은 하나의 나무기둥 뒤편에 설치해 놓았다. 따라서 관객은 3개의 나무기둥에 가려진 작품을 정면에서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다. 그러므로 관객은 3개의 기둥 뒤에 가려진 곳을 보기 위해 좌/우측면에서도 작품을 보게 된다.

와이? 왜 이인현은 자신의 작품을 기둥들 뒤에 설치해 놓은 것일까? 머시라? 관객이 그의 작품을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요? 뭬야? 왜 그는 관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보도록 연출한 것이냐고요? 네? 그의 <회화의 지층_재생>은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으로도 연장되어 있기 때문이라고요? 이인현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캔버스의 면과 면이 꺾이는 경계는 누가 불가침을 정해놓은 것도 아닐텐데, ‘옆의 아우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강력하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 면을 칠할 때는 붓이 절대로 옆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가상적인 평면에서 붓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물감이 흘러나와 옆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이인현은 회화의 역사를 ‘정면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의 <회화의 지층> 시리즈는 바로 ‘정면의 회화’에 딴지를 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그의 <회화의 지층> 시리즈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회화의 측면’을 폭로한 작품이라고 말이다. 그는 ‘회화의 측면’이 “없던 걸 내가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거나 가려졌던 것을 강조하거나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내 작품의 두께는 10cm 정도로 일반적인 평면작품들보다 상당히 두꺼운데, 이것은 옆면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원래 그림이란 정면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옆면은 사실상 필요 없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회화도 하나의 사물, 오브제인 이상 옆면이 필요가 없다고 해서 삭제해버릴 수는 없는 부분이죠. 요즘 현대회화에서는 액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그림의 옆면은 액자를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액자는 그림의 보호라는 1차적인 용도 이전에 옆면을 가려주는 역할도 하는 거죠. 물감의 덩어리라고 하는 현실의 무게를 벗어나 일루전으로 승격된다고나 할까요.”

 

회화가 조각을 만났을 때

소소 갤러리는 기획전 《러브 마이너스 제로》를 개최한 후 보름간의 전시철수와 새로운 전시준비를 거쳐 기획전 《오버 노 리미트》를 개최했다. 1층 전시장에는 박기원과 이인현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인현은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점들만 표현한 <회화의 지층_再生>(2014)을 벽면에 설치한 반면, 박기원은 기획전 《러브 마이너스 제로》에 전시했던 <그라운드>의 알록달록한 클로스 볼들을 일부만 남겨두었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은 거대한 캔버스(120x360cm)에 유화물감으로 점들을 찍은 것이다. 이인현은 흥미롭게도 점들을 쌍을 이루도록 찍어놓았다. 그의 <회화의 지층_재생> 경우는 위/아래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치 마주 보듯 찍혀있다. 바탕칠도 되어있지 않은 민감한 ‘피부(표면)’에 찍는 일회적 행위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화면에 점을 한 번 찍고 나면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인현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캔버스의 사이즈가 커지다 보니 자연히 화면 속으로 들어가 작업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캔버스가 현실적인 바닥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하얗게 눈이 쌓인 곳에 사람이 걸어가는 듯, 혹은 학이나 사슴 같은 동물이 발자국을 찍은 푹신한 느낌과 비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점을 찍었지요."

흥미롭게도 이인현은 거대한 화면에 위/아래 커플 점 이외에도 싱글 점도 찍어놓았다. 화면 왼쪽에 위/아래 찍힌 두 개의 점 밑에 찍힌 점 하나 말이다. 따라서 점들이 마치 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 느끼게 한다. 그런데 절묘하게도 박기원은 이인현의 캔버스에 점들만 표현한 작품 밑에 알록달록한 클로스 볼들을 연출해 놓았다. 따라서 이인현의 작품에 표현된 팁블루 점들과 박기원의 알록달록한 동그란 클로스 볼은 서로 문맥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박기원은 소소 갤러리 1층과 2층 사이의 전시공간에 2점의 <넓이(Width)>(2014) 시리즈를 전시했다. 그의 ‘넓이’ 시리즈는 한지 위에 유채로 그린 그림이다. 그것은 언 듯 보면 마치 그린 모노크롬 페인팅(green monochrome painting)처럼 보인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그의 ‘넓이’ 시리즈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녹색 단색화가 세필로 수많은 선을 그려놓아 형성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넓이’ 시리즈는 ‘달콤 쌀벌한 회화’라고 할 수 있겠다.

머시라? 왜 박기원은 유화물감으로 캔버스가 아니라 한지 위에 작업했느냐고요? 뭬야? 한지가 인공적이라기보다 자연적인 재질이라는 점 때문이라고요? 네? 한지는 캔버스보다 최소한의 부피감을 지니기 때문이라고요? 머시라? 작품 제목인 '넓이'는 무엇을 뜻하느냐고요? 뭬야? 그것은 특정 장소와 공간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요? 네? ‘넓이’는 특정 장소와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표현한 것을 뜻하는 것 같다고요?

박기원은 “20여년 간 한지로 작업해왔는데 작품세계를 넓히기 위해 캔버스도 사용한다”면서 “캔버스를 사용할 경우 두툼한 질감을 싫어해서 20~30호의 작은 붓으로 얇게 반복해서 칠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한지나 캔버스에 “밑칠은 따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흥미롭게도 박기원은 한지의 테두리까지 붓칠을 해놓아 연속성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연속성’이야말로 ‘넓이’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인현은 소소 갤러리 2층 벽면에 한 점의 <회화의 지층_再生>(2014)을 전시했다. 그것은 가로가 유난히 긴 직사각형(120x360cm)의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그는 그 기다란 작품을 벽면으로부터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설치된 나무기둥이 있는 뒤편에 설치해 놓았다. 그렇다! 이인현은 마치 박기원이 <그라운드>에서 일부 클로스 볼을 남겨둔 것처럼 기획전 《러브 마이너스 제로》에 전시했던 2점 중에서 좌측의 작품을 철수하고 우측의 작품만 남겨두었다. 말하자면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은 하나의 나무기둥 뒤편에 설치해 놓은 작품이라고 말이다.

만약 나에게 밥 딜런(Bob Dylan)의 <러브 마이너스 제로 / 노 리미트(Love minus Zero / No limit)>를 빌려 말할 수 있도록 허락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싶다. 박기원의 작품과 이인현의 작품이 만났을 때, 그들의 작품은 마치 침묵처럼 말하며, 관념적이지도 폭력적이지도 않고, 그들의 작품은 자신이 충실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작품은 얼음처럼. 불처럼 진실하기 때문이다.

회화가 현실이 되려면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지난 7월 8일 우리는 ‘차 스튜디오’에서 또다시 만났다. 박기원 & 이인현 2인전 《박기원이 이인현을 만났을 때》 작품들을 연출하기 위해서였다.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작품들도 모두 차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박기원과 이인현은 차 스튜디오 1층과 2층에 작품들을 프로답게 배치해 놓았다. 작품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이곳에 관객이 차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작품들을 보게 될 동선을 따라 그들의 작품들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해 보도록 하겠다.

만약 관객이 차 스튜디오 입구를 들어선다면, 관객은 무엇보다 야생적인 공간과 마치 맞짱 뜨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 두 점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이 전시장으로 들어섰을 때 전시장 입구 맞은편에 설치된 작품 두 점을 만나게 된다고 말이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1999) 2점이 그것이다. 크기가 같은 그의 <회화의 지층> 2점은 크기가 서로 다른 유리창 밑에 설치되어 있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일명 ‘양수리’로 불린다. 양수리? 혹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兩水里)를 말하는 것이냐고요? 400년 된 장대한 느티나무와 이른 아침 물안개 피는 양수리의 풍경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을 보고 양수리 풍경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이인현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강에 먼 산이 비치듯이 그림에 그림을 붙여서 찍어내고 지나가면서 산의 옆면도 보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보고 ‘양수리 풍경 같다’고 해서 저도 그냥 ‘양수리’라고 부릅니다.”

그림에 그림을 붙여서 찍어낸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유난히 기다란 (직사각형이라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막대형 캔버스(20x120cm)에 작업한 것이다. 그런데 그 기다란 캔버스는 두 개의 파트(2 parts)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막대형 캔버스(10x120cm) 두 개로 작업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의 <회화의 지층>은 두 개의 막대형 캔버스에 작업된 것을 위/아래로 접합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 점은 당신이 그의 <회화의 지층>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 본다면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머시라? 이인현의 ‘양수리’ 그림을 보면 위와 아래의 산들이 절묘하게 대칭되어 보이는데,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냐고요? 그것은 작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기도 하면서 그리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양수리’ 그림의 상단은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지만, 하단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아니다! 작가가 손으로 그린 것은 보이지 않고 그림이 그린 것만 보인다.

뭬야? 무슨 말인지 ‘접수’가 되지 않는다고요? 이인현은 ‘우선 캔버스의 윗면에 물감을 칠해 놓고 캔버스의 앞면으로 물감이 번지게 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고 있는 <회화의 지층_재생> 앞면은 작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린 셈이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그린 윗면은 두 개의 막대형 캔버스 가운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다. 물론 캔버스 측면도 물감이 번져 그려진 앞면과 마찬가지로 그림이 스스로 그려놓았다.

네?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다고요? 내가 언급한 것은 이인현의 ‘양수리’ 초기작업 방식이라고요? 차 스튜디오에 전시된 그의 <회화의 지층_재생> 시리즈는 초기작업 방식에서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라고요? 말하자면 이인현의 ‘양수리’ 초기작업 방식은 위와 아래의 산들을 절묘하게 대칭되게 작업하기 쉽지 않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캔버스 윗면에 물감을 칠해 앞면으로 번지게 하여 완벽한 대칭을 얻기는 미션 임파셔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후 판화방식을 채택한다. 작가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우선 캔버스의 윗면에 물감을 칠해 놓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캔버스에 동일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기다란 막대에 천을 두 겹으로 겹쳐 싸서 캔버스에 칠해진 물감을 찍습니다. 그리고 기다란 막대에 겹쳐 싼 두 겹의 천을 해체해서 각각의 막대에 다시 뒤집어 매면, 두 캔버스가 조합된 정확한 반영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작업된 두 파트를 위아래로 겹쳐 놓은 것이 일명 ‘양수리’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 2점에서 왼쪽 작품은 위/아래가 ‘한 몸’으로 접합된 것으로 보이지만, 오른쪽 작품은 위/아래가 마치 ‘따로국밥’처럼 ‘두 몸’으로 접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왼쪽 작품은 두 파트를 접합시킨 것인 반면, 오른쪽 작품은 두 파트를 각각 위/아래로 설치해 놓은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오른쪽 작품은 왼쪽 작품과 비교했을 때 위/아래 두 파트 사이의 ‘틈’이 좀 더 벌어져 보인다.

머시라?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흥미롭게도 캔버스의 높이와 깊이가 같아 보인다고요? 그렇다! 기다란 막대형 캔버스의 측면 깊이(10cm)는 캔버스의 정면 높이(10cm)와 같다. 이를테면 그의 <회화의 지층>은 두께를 지닌 회화라고 말이다. 따라서 관객이 그의 작품을 측면으로 본다면, 정면에서 본 물감의 번짐이 연장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회화의 정면/측면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그림을 완성해가는 수많은 선택의 종결이라는 의미에서 액자가 씌워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변화를 수반합니다. 액자는 그림을 그림일 수 있게 하는, 즉 회화의 제도권진입을 허용하는 일종의 ‘증명서’ 같은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달리 말하면 그림을 그림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낙인’이기도 하죠. 액자를 ‘틀’이라고 부르거나 영어로 ‘프레임(Frame)’이라고 할 때 다가오는 이중적인 의미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바로 이 액자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영리라는 것은 권위와 직결되기도 하고요. 회화를 지탱하는 회화의 옆면을 액자가 보호하면서 은폐하듯이, 미술관은 미술품을 격리하면서 보존합니다. 역설적이게도 회화가 현실이 되려면 미술관을 벗어나야 합니다.”

수평(水平)

머시라? 차 스튜디오 1층 전시장에는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만 전시되어 있느냐고요? 아니다! 만약 당신이 차 스튜디오에서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을 보고 뒤돌아서면 입구 쪽 좌측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박기원의 <수평(Horizontality)>(2021) 시리즈 3점도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박기원은 관객이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만 보이도록 자신의 작품들을 좌측 모서리 벽면에 연출해 놓았다고 말이다.

박기원의 <수평> 시리즈는 종이에 파스텔로 기하학적 형태를 그려놓은 것이다. 아니다! 만약 당신이 그림으로 한 걸음 들어간다면, 그것이 한지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것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그림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기하학적 형태들에서 수많은 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세필로 그려진 선들이다. 노랑과 녹색 그리고 청색과 붉은색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선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선들은 교차하고 중첩된다. 박기원은 ‘수평’ 시리즈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2002년 가람화랑에서 천장에 수평으로 투명비닐 설치작업을 전시하며 일부 공간에 색연필로 그린 A4 사이즈 정도의 작은 종이 그림 몇 점을 벽면 위에 부착했었다. 최근 몇 개월 전에 그 그림들이 생각나서 한지 위에 유채로 몇 점을 그리게 되었다.”

나는 2002년 가람화랑에서 열린 박기원 개인전 《수평(水平)》을 방문했었다.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아무런 작품도 전시되지 않은 것처럼 백색의 텅 빈 전시공간을 만난다. 왜냐하면 박기원이 관객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천장에 작품 ‘수평’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가람화랑은 전통한옥 건물을 보수한 갤러리이다. 벽면은 화이트 월(White wall)로 보수한 반면, 천장은 목조구조를 그대로 살려두었다. 따라서 벽면과 천장은 이질적으로 보인다.

박기원은 목조들로 구축된 전시장 천장과 화이트 월이 만나는 지점에 수평으로 낚싯줄들을 팽팽하게 설치하여 그 위에 얇은 투명비닐을 올려놓았다. 따라서 그는 화이트 월과 목조 석까래들의 이질적인 경계에 투명비닐을 개입시켜 일종의 ‘중간지대’를 만들어 놓았다. 천장 아래 수평으로 설치된 얇은 투명비닐은 빛(인공조명)과 바람에 의해 가볍게 흔들리면서 백색의 전시공간에 몽롱한 그림자들을 만들어 놓는다. 그것이 바로 박기원의 설치작품 <수평>이다.

당시 박기원은 전시장에 종이에 연필로 그린 작품들과 색연필로 그린 작품들도 전시해 놓았다. 특히 종이에 연필로 그린 작품은 마치 가람화랑에 설치한 투명비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사선들을 겹치게 그려놓아 마치 낚싯줄 위에 올려놓은 비닐의 물결무늬처럼 느껴지게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종이나 색연필로 작업한 그의 <수평>은 가람화랑이라는 특정한 장소와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박기원의 <수평> 시리즈에 그려진 사선들은 평면적 선이라기보다 오히려 음악의 선율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주름(pli)처럼 보인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그 주름을 사각의 틀로 구성한다. 사각의 틀, 즉 네가지 주름들(plis)은 다름아닌 들뢰즈의 언술행위(discours)의 조건들이다. 그러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조건들이 아닌가? 하지만 그 조건들은 가변적이다. 그리고 그 조건들의 변화가 환원가능한 것이 아니라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상이한 운율을 지닌 것, 즉 사선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 사선(斜線)은 사시(斜視)의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선들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고 중첩되고 다시 방사할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 사선들 중에서 어떤 사선이 시원(始原)인지 물을 수 없다. 그렇다! 선들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단지 선들 사이의 관계를 추적할 뿐이다. 물론 선들 사이의 간격은 단지 국소적인 것이 아니라 국부적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선들은 중첩의 관계로서 작용하고, 그리고 전시장 환경(milieux) 안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세 작품 사이에도 힘은 작용한다.

그러면 힘의 작용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외부는 단지 밖이 아니다. 그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부의 외부에 있는 내부의 외부이기도 하다. 그 특정한(sp cifiaue) 선들은 다양한 층위를 관통하고 횡단하면서 복선의 다이어그램(diagramme)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 복선의 다이어그램은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비켜가기도 하고 교차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들은 전략적 지대(zone strat gigne)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주름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전략적 지대와 가장자리(ligne du dehors) 그리고 지층을 가로질러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살아있는 작품

나는 차 스튜디오 1층에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내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중간쯤에 당도하니 2층 바닥이 수평선으로 보인다. 그 수평선에는 마치 눈송이처럼 보이는 백색 덩어리들이 일렬로 정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계단을 따라 올라갈수록 그 백색 덩어리의 숫자들은 늘어난다. 내가 2층 전시장에 당도하니 크고 작은 백색 덩어리들이 가로 4미터에 세로 4미터의 정사각형 바닥에 ‘산종(散種)’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마치 하얀 눈송이처럼 보이는 백색 덩어리는 심리적으로나마 시원함을 선사한다. 나는 백색 덩어리들의 정체가 궁금해 손으로 살짝 만져보았다. 감촉이 부드럽고 폭신한 쿠션이 있는 그것은 다름아닌 클로스 볼이었다. 7년 전 박기원이 소소 갤러리에서 알록달록한 솜뭉치인 클로스 볼들로 작업한 <그라운드>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수천 개의 클로스 볼로 작업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차 스튜디오에 수백 개의 클로스 볼로 작업해 놓았다.

박기원의 <그라운드>는 전시장 바닥을 아예 볼 수 없도록 이중 혹은 삼중으로 알록달록한 클로스 볼들을 촘촘하게 쌓아놓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 차 스튜디오에 전시장 바닥을 볼 수 있도록 듬성듬성 클로스 볼들을 산종시켜 놓았다. 7년 전 소소 갤러리에서 그는 백색의 전시공간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알록달록한 클로스 볼들을 사용했다면, 이번 차 스튜디오의 야생적인 공간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백색의 클로스 볼들을 설치해 놓았다. 그는 이번 차 스튜디오의 설치작품을 <찬 공기(Cold Air)>(2021)로 작명했다. 찬 공기? <찬 공기>에 대한 박기원의 작가노트를 보도록 하자.

“물거품, 우박, 백색 덩어리, 무게, 솜먼지, 굵은 눈발, 큰 공기, 질량, 허황된 것, 찬바람, 보이지 않는 바람, 바람 소리, 차가운 덩어리, 공기 질량, 차가운 공기의 덩어리를 보듯, 바닥에 모아놓은 공기의 형태들.”

박기원의 작가노트는 설치작품 <찬 공기>만큼이나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시(詩)적이다. 그는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나 공간에 주목한다. 따라서 그는 전시공간을 ‘작품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오히려 ‘공간과 함께 호흡하는 작품’을 지향한다. 따라서 그의 설치작품은 어느 곳에서나 전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그는 “이미 만들어진 환경이나 풍경은 그대로 있고, 그 위에 ‘미세한 공기의 흐름’, 팔의 솜털이 움직이듯 한 미세한 바람처럼 어떤 자극도 없어 보이며, 방금 지나친 한 행인의 기억할 수 없는 모습과 같은 최소한의 ‘움직임’을 원한다.”

박기원은 주로 부피감이 적고 가벼운 일상적인 ‘레디-메이드’들로 수작(秀作)들을 제작했다. 쓰레기봉투에 쓰이는 노랑 투명 칼라비닐이나 볼펜 심지에 들어있는 얇은 철실 그리고 시트지와 사선 테이프, 얇은 무늬목과 얇은 플라스틱 거울 또한 투명 에어튜브와 클로스 볼 등이 그것이다. 물론 그는 투명 바니쉬(varnish)도 사용했다. 그는 자연의 빛뿐만 아니라 인공조명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또한 공기의 흐름인 바람도 차용했다. 그는 주어진 장소에 최소한의 재료들로 장소의 특성을 고려하여 장소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설치작품들을 제작했다.

흥미롭게도 박기원이 전시공간을 면밀히 관찰하고 작품화하는 그의 방식이 처음으로 시도된 작품 제목이 <움직임>(1996)이란 점이다. 그는 단단한 벽면에 조명을 장착하고 그 앞에 투명 비닐을 설치해 너머의 공간을 상상케 했다. 그리고 그는 바람을 이용해 작품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도록 했다. 그는 장소의 부피나 온도나 흐름 등에 주목했다. 그는 한 마디로 ‘살아있는 작품’을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다. 나는 그 점을 상기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제목들을 이곳에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부피>(1997), <수포 속으로>(1998), <수평>(2003), <깊이>(2003), <더운 곳>(2004), <감소>(2005), <파멸>(2006), <가벼운 무게>(2006), <넓이>(2007), <진공>(2008), <마찰>(2008), <부유>(2009), <부메랑>(2009), <배경>(2010), <희미한>(2010), <에어월>(2010). <낙하>(2011/2015), <그라운드>(2014), <X>(2013/2015/2017), <정원>(2014), <플래쉬 월>(2014/2016), <온도>(2015), <원경>(2016), <도원경>(2016), <만개>(2016), <물결>(2018), <사색적 허공>(2018), <안개(2018), <연속>(2019), <찬 공기>(2021) 등이 그것이다.

박기원은 1990년 <공(公)을 위한>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작품의 중심에 관객을 둔 설치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따라서 관객이 부재하는 그의 작품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관객을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나가면서 박기원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따라서 그의 ‘살아있는 작품’은 일시적일 뿐이다. 그의 ‘살아있는 작품’은 전시를 통해 일시적으로 살다가 전시가 끝나면 사라진다. 따라서 위에 나열한 작품들 모두 지금은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박기원은 주어진 장소와 ‘레디-메이드’들을 통해 예술작품을 제작한다. 그에게 예술작품이란 장소와 재료들을 접목시켜 관객에게 오묘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작품은 우리의 이성적 한계를 뛰어넘어 타자와 교감하는 접신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술작품이 관객에게 오해를 전제하고 오독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그는 예술작품에 그러한 ‘폭력적 오독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내적 충만함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기원은 예술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금기와 위반을 든다. 왜냐하면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는 금기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박기원은 예술작품을 에너지의 소비로, 생명력을 낭비하고 소진해 나가는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죽음까지 불사하는 예술작품은 금기의 위반 없이는 체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금기를 위반함으로써 쾌락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에게 예술작품의 최종적 의미는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음은 살아있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하지만 그는 예술작품에 내재한 ‘죽음의 충동’을 간파한다. 따라서 그는 예술작품을 통해 ‘숭고함’과 ‘죽음’으로 다룬다. 물론 그는 지속적인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해체시키면서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여 일시적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일종의 ‘작은 죽음(petite mort)’이 아닌가? 그는 오늘도 ‘작은 죽음’을 맞이하고, 내일 또 다른 ‘살아있는 작품’을 잉태시키게 될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박기원의 <찬 공기>가 전시된 2층 전시장 벽면에는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再生>(2017)이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언 듯 보기에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신이 그림으로 한 걸음 들어간다면, 그것이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된 작품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크기의 다섯 개 캔버스에는 스밈의 딥블루에서부터 번짐의 스카이 블루(sky blue)까지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블루를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이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은 흥미롭게도 전시장 벽면에 박혀있는 두 개의 나무기둥에 설치되어 있다. 문득 2014년 소소 갤러리 2층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회화의 지층_재생>이 떠오른다. 그런데 소소 갤러리에 전시된 <회화의 지층_재생>은 벽면과 일정 간격을 둔 나무기둥들 뒤편에 설치된 것이라면, 차 스튜디오 2층 전시장 벽면에 전시된 <회화의 지층_재생>은 벽면에 박혀있는 나무기둥들 앞에 설치되어 있다. 이런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이인현의 섬세함에 난 감탄하지 않을 수 엄따!

머시라? 작품 제목인 <회화의 지층_재생>에서 ‘재생(再生)’의 뜻이 무엇이냐고요? ‘재생(再生)’은 흔히 거의 죽게 되었다가 되살아 남, 사후(死後)에 혼이 다른 육체 속에서 다시 생활을 시작함, 신앙(信仰)을 가져 새로운 생활을 시작함, 버리게 된 물건(物件)을 다시 쓰게 만듦, 한번 경험한 내용을 어떤 기회에 다시 생각나서 말하고 쓰게 됨, 상실(喪失)된 생물체의 일부가 다시 자라나는 현상(現象), 녹음(錄音)한 것으로 전(前)의 음성(音聲), 가곡(歌曲) 등(等)을 다시 들려주는 일 등을 뜻한다.

그런데 이인현이 말하는 ‘재생’은 ‘재탕’ ‘재전시’ ‘재활용’ ‘재활’ 등으로 확장된다. 그는 재생을 영문으로 ‘refur’ ‘refurbish’ ‘refurbished’ ‘replay’ ‘rebirth’ 등 상호 의역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2012년 이인현은 가인갤러리에서 개인전 『100% 리퍼브 쇼(100% REFURB SHOW)』를 개최했다. 리퍼브(REFURB)? ‘새로 꾸민다’는 의미의 ‘리퍼비시(Refurbish)’의 준말? 그렇다! 그렇다면 이인현이 말하는 ‘리퍼브’는 공장에서 출고될 때 흠이 있거나 반품된 제품, 전시상품 등을 다시 손질해 싼값에 되파는 제품을 뜻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인현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리퍼 제품, 리퍼브 제품의 그 ‘리퍼브(refurb)’입니다. 리퍼브란 비교적 최근에 등재된 마케팅용어로, ‘새롭게 하다’ ‘개조하다’라는 의미인 ‘리퍼비시(refurbish)’의 줄임말인데, 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되거나 미세한 흠집이 있지만 실사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전시상품, 혹은 단지 포장이 약간 훼손된 상품 등의 재판매를 목적으로 재포장, 새단장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_재생>은 2017년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1990년대 작품을 ‘재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은 1990년대 작품을 똑같이 재제작한 것은 아니다. 그림의 바탕의 천도 다르고 유화물감의 농도도 다르다. 따라서 그것은 ‘신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재생’이라고 표기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제작하면서 “새로 무언가를 ‘처음으로’ 만든다는 부담감이 없이 제작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는 “머릿속으로 ‘그때 그것’을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2012년 이인현은 ‘신작을 안 만들겠다(100% REFURB SHOW)’고 선언하고, 가인갤러리에서 100% 구작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구작’은 문자 그대로 ‘구작만’을 재전시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구작에 보충을 통해 전시한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그는 구작에 작업 테이블이나 붓, 커피잔이나 아이의 신발과 같은 ‘물건들’을 보충하여 ‘재생된(refurbished)’ 것이라고 말이다.

당시 이인현은 제작년도가 10년 이상 차이 나는 자신의 작품들을 접목시키거나 ‘피처링(featuring)’의 개념을 도입해 두께가 있는 자신의 회화가 두께가 없는 정광호 작가의 작품을 서로 중첩시키는 작품도 선보였다. 그리고 그는 가인갤러리의 공간 자체를 마치 회화의 액자처럼 연출하여 프레임의 문제들을 폭로하였다. 덧붙여 그는 작업과정에서 나온 파지나 허드레 천을 재활용한 작품도 전시했다.

그러고 보니 이인현은 차 스튜디오 2층 유리창들 사이에 천에 유화물감의 농도를 연습한 ‘것’을 유리 액자에 넣은 <회화의 지층>(1995)도 전시해 놓았다. 이를테면 그것은 일정량의 테레핀으로 점점 묽게 만들어간 점들을 찍은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천에 연습용으로 찍은 점들이 유리 액자에 넣어져 ‘작품’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액자는 단순히 작품을 보호하는 기능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연습용’을 ‘작품’으로 재생(regeneration)시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 아닌가?

2012년 이인현은 “연습용이나 버린 것으로 다시 작업을 발표한 이래 파지들을 버리지 않고 모으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실 파지를 보관한다는 점에서 이미 조금은 불순할지 모릅니다. 한번은 처음부터 파지처럼 시간의 흔적과 통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을 만들어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일부러 못 그린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고난이도의 노동입니다. 무엇보다 심정적으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이 어색함은 나만 느끼는 비밀 같은 것이라 굳건하게 정색을 지켜야 합니다.”

파지? 물론 이인현이 말하는 ‘파지’는 찢어진 종이나 일정한 규격에 어긋나 못 쓰게 된 종이 혹은 글을 잘못 써서 못 쓰게 된 종이(破紙)를 뜻하는 것일께다. 문득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인 파지(把持)가 떠오른다. 파지(retention)는 흥분, 경험, 반응의 결과가 장차의 반응이나 경험의 수정의 기초로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머시라? 좀 쉽게 설명해 달라고요?

우리는 의식된 인지적 내용이든 그렇지 않은 내용이든 경험에 의해 얻은 내용들을 저장한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재생’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 재생되는 것을 ‘파지’라고 한다. 이인현의 어록들 중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말을 재생한다면 다음과 같다.

 

“나의 긴 목표 중의 하나가 작품 없이 전시가 가능할 수 없을까, 혹은 작품활동 없이 어떻게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실천입니다. 예로 들긴 좀 쑥스럽지만 말년의 뒤샹(Marcel Duchamp)이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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