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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처럼 오는
As a Flash of Light


유혜숙
더 소소
2024. 4. 26 - 5. 24

 

시간의 벽을 가르는 회화 ​

 

전희정(갤러리 소소)

 

     장면이 전환되고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나간 시간과 오고 있는 시간이 충돌해 지금 여기, 오직 현재만이 있다. 그 어떤 서사도 제공하지 않는 푸른 화면은 그 안의 색과 빛, 형태와의 오롯한 만남을 중개한다. 이 순수한 현재의 경험은 인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시간에서 순식간에 지금 이 순간으로 보는 이의 의식을 돌려놓는다. 현재에 대한 극명한 인식은 세포 하나하나를 일으켜 깨워 눈 앞의 회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유혜숙의 깊고 푸른 회화가 보는 이에게 주는 장면의 전환이자 새로운 국면이다. 

    유혜숙의 회화가 주는 생경한 현재성은 그녀의 모든 작업 과정에 내재되어 있다. 완성된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시작되는 작업은 화면을 질료로 무수히 덮으며 이어진다. 그 속에는 재료를 다루는 손의 감각과 화면에 닿는 재료의 변화, 그것을 보는 작가의 정신적 반응 등 매순간의 현상들로 가득 채워진다. 이 반복적인 행위가 멈추고 그동안의 작업이 완성된 회화로 귀결되는 때는 그녀가 작업을 시작하게 한 어떤 열망의 모습이 화면에 구현된 순간이다. 이렇게 완성은 과거의 계획이 아닌 오직 그것이 있다고 믿고 작업을 행한 작가의 의지로부터 온다. 그렇기에 그녀의 회화는 시작부터 완성까지 모두 현재로 이루어진다.

    회화가 도달할 영역에 대한 작가의 믿음은 확고하다. 작가 스스로 세계의 균열, 저 너머로 갈 수 있는 틈, 희망, 여지라 칭하는 그것은 작가를 매일 작업실로 이끌고 무수한 반복 작업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을 시각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막연하고 힘든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즉흥적인 움직임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회화를 선택하고, 몇 안되는 적은 수의 재료를 사용하여 끝없이 팔을 움직인다. 지금 이 순간의 작업에 모든 것을 맡기고 완성된 회화가 눈앞에 현현하기를 인내하며 계속되는 현재를 맞는 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완성의 순간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신과 행위 그리고 화면에 드러나는 상이 하나가 되는 몰입이다. 작업 그 자체에 몰입하는 사이, 구상과 추상의 구분은 필요가 없어지고 재료의 선택 역시 몰입을 위한 요소로 기여한다. 때문에 화면은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올한올을 묘사하는데 할애되거나 목탄이나 흑연, 아크릴, 크레용 같은 검은 질료가 무수히 겹쳐져 검은 회화가 되기도 했다. 작가는 이렇게 작업의 시간이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화면에서 획과 획 사이의 미묘한 명암으로, 빛을 받아 반사되는 흑연의 반짝임으로 현존 그 자체의 의미를 증명해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손으로 더듬으며 작업을 이어온 그녀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검은 색 재료들을 내려놓고 최근 몇년간 물감과 잉크를 사용해 푸른 회화를 만들었다. 그녀의 표현처럼 매일 밭고랑을 가는 농부, 종을 치기 위해 탑을 오르는 수사와 같은 마음으로 해왔다는 인고의 작업에서 다채로운 푸른 빛의 등장은 극적이다. 잉크를 흘리고, 붓질을 하고, 색연필을 올린 푸른 회화에는 섬세하게 쌓아 올린 빛의 겹이 있다. 어둠보다 더 깊은 곳까지 날아가는 푸른 빛은 그녀의 회화에 나타난 오늘의 사건이며 현재를 밝히는 새로운 장이다.  

    자욱하게 눈을 가리던 검은 안개가 걷히자 푸른 벽이 나타난다. 그것은 거대한 절벽처럼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앞에서 숨을 삼키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 벽의 존재감을 온몸으로 받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벽을 이루고 있는 푸르른 빛의 겹이 보인다. 그 빛은 수많은 오늘이 겹쳐져 만들어진 시간의 흔적이다. 그 시간의 벽 사이로 한줄기 빛이 나타난다. 그것은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존재의 벽을 허물고 섬광처럼 온다. 시간을 가르며 나타난 그녀의 회화 앞에서 나는 이 순간 온전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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