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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Tele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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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더 소소

2026.10.30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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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쓰고 있는 동시에 읽히고 있으니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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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위에서 작가가 눈으로 담은 세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이 서로 포개진다. 시선이 이끌리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현실에 몸을 내버려두고 두 눈만이 어느덧 작가의 심상에 다다르게 된다. 오랜 시간 스며든 시간들이 작가의 손을 통해 한 폭의 이미지로 거듭난다. 회화 속에 납작하게 발행된 시간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 속으로 다시 스며든다. 시간을 따라 흐르거나 역류하는 기억이 있다. 일상의 틈에 박혀 있는 오래된 기억들. 채 식기도 전에 지상으로 끌려 나온 감람석[2]처럼, 너무 빠르게 지나는 시간 때문에 나아갈 생각을 잊거나, 때로 희미해지는 것들. 집이라는 내밀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그 사이에서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것들. 창문을 통해 시선을 바깥으로 멀리 뻗어본 일. 그리고 여행을 다니며 얻은 새로운 경험과 그로 인해 확장된 시야. 몸은 그대로 둔 채로, 망원경을 통해 두 눈을 대상 가까운 자리로 보낸다는 작가의 흥미로운 생각. 이 글은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고니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응시 — 집

 

고요한 방이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한 겹 더 입은 옷처럼 가깝고, 아늑하면서도 권태로운 공간. 한낮의 햇빛으로 가득한 방에 누워 있을 때 할 수 있는 생각과, 같은 방 안에서 까만 밤에 스며든 채로 이어나가는 사유가 서로 달랐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니는 모습을 바꾸는 시간을 반복되는 형상이나 연작을 통해 기록해 본다. 경험들은 늘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얽힌다. 가장 큰 안식을 느끼는 대상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당연하던 것들이 새삼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보여서, 애틋하면서도 때로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들. 집은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고, 가장 익숙하기에 변화를 크게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무방비하게 마음을 꺼내고, 나도 모르게 속내를 쏟아도 걱정하지 않을 장소. 집은 스스로의 시선이 어디에서 왔는지, 혹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정리하는 곳이 아닐까. 고니의 작업에서 집은 시선이 형성되는 장소이다.

 

고니는 회화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이러한 연구는 다양한 형태와 방법을 통해 이뤄지는데, 삶에서 체험하고 체감한 것들을 회화를 통해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회화라는 실천 혹은 태도가 현실과 어떻게 긴밀하게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고니의 작업관에서 회화는 현실에 놓여 있는 것들과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 느슨하게 이어지거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이다. 대상의 형태를 빌려오면서도, 대상이 현실에서 그리고 그림 속에서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상에서 형상을 옮겨오는 것은 그 대상을 재현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대상이 관찰된 분위기, 의미, 의도를 온전히 품어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고니에게 이미지는 심리적으로 축적된 감각들이 현실의 물리적 조건과 접촉함으로써 촘촘하고 밀도 있는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고니의 시선은 대상의 표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지를 단서로, 그것이 이끄는 내부의 세계를 오롯이 이해하는 일에 천착해왔다. 그래서 그리기에 앞서 그 대상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작가는 소설의 한 글귀에 매료될 때가 있지만, 그 감각을 그림으로 호환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글도 감각을 정리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때로 정물처럼 우연히 발견될 때가 있다. 하지만 소설은 타자의 체험과 시선이 적힌 것이고, 글을 차용하는 건 다른 사람이 그려낸 그림을 다시 그리는 일이다. 공감은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지만, 그 감정은 각기 다른 경험과 이해를 통해 형성된다. 어렴풋이 헤아릴 수는 있지만, 그 문장이 빚어진 과정을 고스란히 알 수는 없다. 고니는 추측만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기보단, 포착과 생각의 근원을 골몰해 본다. 작가가 붓을 드는 순간은 시간과 풍경, 그리고 대상이 피부로 이해되는 순간일 것이다.

 

 

상태 — 결로

결로는 내부의 온도에 비해 벽이 차가울 때 물방울이 맺혀 발생한다. 서로 다른 조건이 맞물릴 때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회화의 표면 역시 서로 다른 조건들이 맞물리고, 시도와 우연, 수용과 번복을 거치며 발생한다. 처음부터 의도한 결과라기보다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들이 표면에 남고, 그것들이 다시 다음의 선택을 만들어낸다. 변화와 미세한 감각들을 기록하듯 그려내며 오랜 응시를 한눈에 읽을 수 있게 한다. 구상적인 이미지는 의외로 유기적인 흐름을 거쳐 완성된다. 대상의 모습이나 성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취하게 되는 움직임을 통해 화면이 전개된다. 젖어있는 화면에 안료가 닿으며 퍼져나가고, 필치를 얇게 올리는 과정에서 기존의 형태가 무너지거나 더해지기도 한다. 형상의 용도와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지점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행해지는 기법들, 신체에 체득된 감각과 현상하는 상태 사이의 균형을 맞춰본다. 감각의 경로를 떠올리며, 그리기의 균형을 맞추다 보면 어느덧 필연적인 이미지에 다다른다.

고니의 작업에서 질감은 그림을 작동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질감은 묘사라기보다는 관찰한 것의 ‘상태’를 실천한다. 상태는 목가적 풍경처럼 형용사적인 인상을 수반하기도 하고, 결로, 돌, 물기와 같은 대상의 질감과, 밤공기나 해무와 같이 시야에 영향을 주는 환경을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무언가를 바라보는 상태인 동시에 대상이 존재하는 방식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말한다. 표면의 입자와 질감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이미지의 깊이와 밀도를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물성으로서 시선을 붙잡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비가시적인 공간감과 거리감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지지체에 안료나 건식 재료를 문지를 때 드러나는 저항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거나, <결로>의 입자를 물감의 분사를 통해 표현하고, 물감이 마르는 동안 생겨나는 흘러내리거나 고인 채로 마른 흔적을 응용해 보기도 한다. 때로는 먼지와 머리카락이 내린 모습을 그대로 옮겨오기도 한다. 긴 시간을 통해 체감된 것을 그려내되, 이미지가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작가에게는 중요해 보인다. 대상이 이미 지니고 있던 표면적 상태를 구상으로 드러내되, 재료의 물성과 질감을 통해 분위기와 같은 추상적인 영역을 시각화한다. 질감은 그림에 덧붙는 효과가 아니라, 대상이 관찰되고 체험된 모습 그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요소이다.

 

 

먼 곳 —  망, 원경

 

고니의 시선은 집이라는 정서적 공간으로부터 창밖으로 보이는 먼 곳으로 확장된다. 회화는 관찰자가 풍경이나 대상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고 곱씹었는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어떠한 질문을 품고 있는지, 그 질문을 통해 무엇을 더 볼 수 있었는지가 형상으로서 말없이 드러난다. 이러한 고민의 시간은 망설임과 번복의 흔적이 제거된 정제된 화면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때로는 그 과정 자체가 형태와 구성에 반영되기도 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장면을 그림으로 담았을 때 생기는 거리감의 차이와, 가까운 표면을 바라볼 때와 먼 거리의 대상을 바라볼 때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고민해 본다. 원경은 몸(눈)과 대상 사이의 간격을 시야 확보가 가능한 지점까지 늘렸을 때 감각할 수 있는 장면이다. 멀리 있는 대상을 바라볼수록 시선은 한 지점에 집중되고, 그만큼 주변의 시야는 좁아진다. 고니는 이러한 시야의 차이를 화면의 크기와 연결해 본다. 원경은 작은 캔버스에, 가까운 거리는 비교적 큰 캔버스에 그려진다. 화면의 크기는 단순히 대상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거리와 집중의 정도를 반영한다. 먼 거리에 대한 시선을 담은 작은 호수의 작업들에서는 희미하게 묘사된 이미지를 통해 원경에 있는 대상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을 드러내기도 한다[3]. 방충망을 떠올리는 격자무늬는 화면에 질감을 더하면서도, 시선이 먼 거리를 향하는 동안 몸은 여전히 실내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멀리 바라볼수록 한 지점으로 좁혀지는 시야와,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 되는 감각을 담아본다.

 

 

이곳 — 답사

 

집이라는 단어로 정리되던 작가의 심상은 답사를 통해 이해의 범위를 확장한다. <바리케이트>와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사람>연작에서는 실내, 가구[4], 정물 등의 대상을 중심으로 심리적 풍경을 드러냈었다. <결로>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바라보는 대상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지에 집중하며 회화적 탐구를 이어나간다. 2023년도 이전의 작업이 내밀한 상태의 은유로서 장소를 드러낸다면, 최근의 작업은 장소를 읽고 이해하는 태도 자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답사를 통해 특정 환경[5]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으로 이어진다[6]. 일상에서 관찰되는 대상들에는 고유의 형태가 있다. 고니는 시간의 흔적이 각각의 자연과 사물을 고유하게 한다고 여기고, 이를 체화하기 위해 고분, 유적지, 돌무더기로 가득한 공원처럼 오랜 세월을 거친 장소를 탐방해본다[7]. 뽀얗게 내린 먼지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긴 부재, 이끼, 물자국, 마모와 균열로부터 엿볼 수 있는 자연적 변화, 그리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온습도와 빛을 체험해 본다. 환경을 직접 체득함으로써, 이미지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체험은 대상이 존재하는 상태를 회화의 물성으로 옮겨보기 위한 감각의 단서가 된다.

 

고니는 답사를 통해 검은 돌을 접하며 검은색을 쓰게 되었다[8]. 그 돌을 그린다기보다는 돌이 드러내는 세월의 흔적과 감촉, 검은 색감에 대한 이해를 이미지로 정리해 본다. 물의 윤슬을 단서로 물 아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물이 반짝이고 흐르는 모습대로 땅이 존재할 것이다. 일상에서 발견했던 물건들[9]이 그 아래 가라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회화를 통해 확대하여 포착해 본다. 답사에서 경험한 대상과 감각은 새로운 심상으로 전환되고, 다시 그림의 형태로 나타난다. 때로는 실내에서 경험한 먼 거리의 시선을 화면에 교차시키기도 한다[10]. 바탕에 이미 표현되어 있던 질감과 형태 위에 실크처럼 얇고 섬세한 색감을 얹는다. 레이어를 섬세하게 쌓아 어두운 색감을 유지하면서도 돌의 표면 같은 질감도 함께 드러낸다. 내재되어 있던 형태가 그리기라는 유연한 행위를 따라 화면에 드러나고, 지표처럼 회화 위에 포착된다. 답사는 도상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리기의 조건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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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은 몸(눈)과 대상 사이의 간격을 시야 확보가 가능한 지점까지 늘렸을 때 감각하게 되는 장면이다. 망원경은 몸과 대상의 물리적 간격은 유지한 채, 렌즈를 통해 시점만을 대상이 있는 곳으로 옮긴다. 망원경을 통해 관찰하는 풍경은 렌즈의 반경만큼 좁아지기도 하고, 맨눈으로는 관찰되지 않던 세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고니는 집과 답사에서 체감한 것들을 떠올리며, 시야의 변화에 따라 풍경에 대한 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복기해 본다. 원경이 작은 화면을 택한 것에 비해, <망원경>(2026)은 150호로 큰 스케일을 택한다. 망원경이 만드는 것은 멀어진 거리가 아니라 당겨진 거리이고, 당겨진 만큼 대상이 크고 촘촘하게 보이는 경험과 연결된다.

망원경의 동그란 시야에서 활짝 열려있는 백팩을 떠올리고, 열린 지퍼를 통해 펼쳐지는 풍경을 그려본다. 주변을 관찰하다가 발견된 사물들을 본을 떠서 오리고, 색을 칠해 콜라주한다. 콜라주는 이미지 조각들을 통해 화면을 새롭게 전환시킨다. 문에 꽂혀 있던 덕분에 머리 부분만 녹이 슨 열쇠, 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이프, 작업실에 놓여있던 물병, 컵, 그리고 펜 등의 요소들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모습 그대로 본떠진다. 흔적이기도 하고, 현실과 회화 사이의 타협점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는 사물이 얼마나 정직하게 드러나는지가 중요해지지만, 그렇다고 바라봄과 그리기에 대한 태도를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 콜라주는 현실과 심상을 느슨하게 잇고, 두 세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11]. 바라봄을 통해 얻은 것들이 어떤 심상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그 풍경이 현실로 어떻게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눈에서 가장 먼 지점임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구분 짓는 선이기도 하다. 바다 위에 떠오르는 해무는 시야를 흩어지게 하면서, 대상과 대상 사이에 채워진 공기의 밀도와 깊이감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원근법이 화면을 통해 대상에 접근하기 위한 시각적 질서를 구축했다면, 고니의 화면은 물성과 질감을 통해 시선이 대상에 닿기까지의 거리를 드러낸다. 아주 먼 거리의 풍경이 망원경을 통해 눈앞에 도착한다. 회화는 희미해졌거나 부재하는 장면을 물성으로 이 자리에 소환 한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분단 이후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집을 자주 추억하셨었다. 고니는 할아버지가 그리워하셨던 고향이 보이는 백령도를 답사했다. 경계 밖에 있어 갈 수는 없지만, 망원경은 시선을 그 땅 위로 초대한다. 망원경은 시선을 닿을 수 없는 지점으로 데려다주지만, 동시에 그곳에 당장 다다를 수 없다는 물리적, 신체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고니는 이러한 거리를 지우기보다 바라봄의 과정 안에 남겨둔다. 긴 바라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해보기 위해서, 회화를 실재의 대체물이 아니라 시선을 이어나갈 단서로서 남겨두기 위해서.

 

문소영(독립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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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속 문장을 빌려왔다. 원문은 “estou escrevendo na hora mesma em que sou lido”로 “읽히는 순간 쓰고 있는듯 하다”고 적혀있다. 소설의 내용과는 무관하고, 파편의 문장만을 빌려왔다. 글을 써내려가는 시간과 글이 읽히는 시점을 붙여놓은 이 문장이, 그림 속에서 맞닿고 교차하는 여러 시선과 시점들과, 체험과 실천을 부드럽게 연결하려는 고니의 시도를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A Hora de Estrela, 1977)』, 민승남 옮김, 을유문화사, 2023. p. 18.

[2] 감람석은 땅 속 깊은 맨틀에 있던 물질이 터져나오는 용암과 함께 순식간에 지상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포획암이라고도 부르는데, 말 그대로 용암이 식어 굳어진 현무암에 둘러싸여 있다. 현무암과 감람석의 시차로부터 회화의 시간성을 떠올린다.

[3] <시야>, 2026, 캔버스에 수채, 연필, 색연필, 15.8 × 22.7 cm

[4]  테이블, 신발장, 그리고 쌓여있는 그릇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테이블에 대한 작가의 노트를 첨부한다. “테이블은 그 형태가 그려지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말로 구체화시켜야 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꺼낼 것 같은 데 입을 닫아버리는 종류의 긴장감이 이 작업을 작동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고니 작가노트, 2026)

[5] “빈 집, 고분, 먼 땅, 돌무더기, 경험, 환경 속에 들어가 보는 일, 상태에 대한 관심” (고니 작가노트, 2026)

[6]  단편적인 시선이 아니라 복합적인 시차를 한 폭에 드러내는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두고 온 집>(2026)에는 그간 작가가 보고 겪은 시간들이 포개져 있다. 펜스 사이로 드문드문 보였던 수풀, 사각거리는 소리, 그 위로 드리워진 답사 가는 길의 장면,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테이블의 이미지와도 이어진다. 답사는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그 주변에 흩어져 있던 작은 감각들까지 한 화면에 포개어 보게 한다.

[7] “이는 시각적 이미지가 담고 있는 성질, 즉 대상을 그 모양으로 존재하게 한 시간의 흔적을 화면에 직접 담아내려는 시도다. 이를 체화하기 위해 나는 오랜 세월이 작용한 장소들을 직접 경험하려 노력한다. 고분이나 풀밭, 오래된 절, 시골의 빈집처럼 긴 시간을 통과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 형태와 표면의 변화를 관찰하고 회화적 장면으로 옮긴다.” (고니 작가노트, 2026)

[8] <보풀 혹은 돌>, 2026, 캔버스에 수채, 연필, 색연필, 50 × 50 cm

[9] <녹>, 2026, 캔버스에 수채, 색연필 및 부분 꼴라주, 12 × 22.7 cm

[10] <보풀 혹은 돌 2>, 2026, 캔버스에 수채, 연필, 색연필, 50 × 50 cm

[11]  콜라주는 서로 다른 이미지와 물질을 조합하여 저부조적인 회화적 구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현실과의 매개로서 콜라주를 도입한 고니의 시도는 화면에서 실재성을 추구했던 피카소의 콜라주 작업의 맥락을 떠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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