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전시일정 : 2020.07.04_08.02,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조금 낮게 조금 높게
참여작가 : 윤상렬
전시일정 : 2020.10.10_11.08,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사전예약 : sosogallery@gmail.com
*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전시일정 : 2020.07.04_08.02,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사전예약 : sosogallery@gmail.com
*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F
참여작가 : 권도연
전시일정 : 2020.11.14_12.13, 11:00-18:00, 월 화 휴관
허밍 허밍
김윤수
2021. 10. 23 - 11. 21
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전시일정 : 2020.07.04_08.02,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조금 낮게 조금 높게
참여작가 : 윤상렬
전시일정 : 2020.10.10_11.08,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사전예약 : sosogallery@gmail.com
*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전시일정 : 2020.07.04_08.02,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사전예약 : sosogallery@gmail.com
*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F
참여작가 : 권도연
전시일정 : 2020.11.14_12.13, 11:00-18:00, 월 화 휴관
허밍 허밍
김윤수
2021. 10. 23 - 11. 21
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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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 윤상렬
전시일정 : 2020.10.10_11.08,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사전예약 : sosogallery@gmail.com
*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전시일정 : 2020.07.04_08.02,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사전예약 : sosogallery@gmail.com
*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F
참여작가 : 권도연
전시일정 : 2020.11.14_12.13, 11:00-18:00, 월 화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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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2021. 10. 23 - 11. 21
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전시일정 : 2020.07.04_08.02,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조금 낮게 조금 높게
참여작가 : 윤상렬
전시일정 : 2020.10.10_11.08,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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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quare
참여작가 : 김인영, 김형관, 민유정, 이혜인, 최영빈
전시일정 : 2020.02.29_03.29,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살.몸.벽
참여작가 : 정정엽, 이해민선
전시일정 : 2020.07.04_08.02, 11:00-18:00, 월 화 휴관
전시제목 : Winter Private Exhibition
전시일정 : 2020.12.15_2021.1.17, 주말, 공휴일 휴관
사전예약 : sosogallery@gmail.com
*사전예약 후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제목 : SF
참여작가 : 권도연
전시일정 : 2020.11.14_12.13, 11:00-18:00, 월 화 휴관
허밍 허밍
김윤수
2021. 10. 23 - 11. 21
이진주, 경계, Korean color on fabric, 104x117cm, 2012
이진주, 모든 입 다문 것들의 대화, Korean Color on Fabric, 112x69cm, 2012
이정배, 울산바위, 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수묵, 142x198cm, 2012
이진주, 경계, Korean color on fabric, 104x117cm, 2012
단서의 경로들
이정배, 이진주
2012. 11. 9 - 12. 9
누가 무엇을 찾는 것일까?
- <이정배, 이진주 2인전: 단서의 경로들>에 대하여
1. 조건들
둘은 하나와 또 다른 하나의 합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둘은 하나와 또 다른 하나의 공존일 수도 있다.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 간의 가장 큰 차이는 합이냐, 공존이냐다. 우리는 통상 하나와 다른 하나가 맺는 관계 중 그 둘이 조화로운 합일(合一)을 이루는 것을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계가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나 대립, 또는 충돌이나 모순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타당하고 긍정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둘이 합일을 이룬다고 할 때, 그 이룸의 과정에서 각자의 다름, 특이성, 이질성 같은 것들이 사라져버릴 가능성 혹은 상대에 의해 어느 한쪽이 억압 받을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하나와 다른 하나가 맺는 관계 중 조화를 가장한 합일의 관계 말고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가 각자의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함께 존재하는 관계다. 요컨대 공존(共存)의 관계다. 예를 들어, 별자리가 각각의 별들이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하거나 유보할 수 없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서 상호 관계 속에 배열된 형상인 것처럼.
이 글을 하나와 다른 하나의 관계 문제로 시작한 이유가 있다. 나는 여기서 작가 이정배와 작가 이진주의 미술에 대해 논하려 하는데, 우선 이 두 작가를 하나의 글 속에서 다룬다는 전제조건이 글쓰기에 앞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 전제조건이란 공식적으로는 두 작가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갤러리 소소에서 2인전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공식적(과연 이를 비공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작가의 창작 및 전시 활동을 공식적인 차원이라고 할 때)으로는 이 두 사람이 부부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안은 보기보다 간단치 않다. 첫째, 가령 우리가 한 작가의 개인전을 두 개 보는 일과 두 작가의 공동전시를 보는 일은 분명 다르다는 점에서 ‘이정배, 이진주 2인전’은 이미 특정한 감상 및 논의의 방향을 취하고 있다. 둘째, 그 두 작가가 부부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불가피하게 각자 고유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는 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영향관계를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과 작품을 비평하는 일에 앞서 이렇게 특정한 조건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견 이정배와 이진주를 함께 묶어 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작가의 미술은 전혀 다르다. 그 다름은 각자 다루는 매체와 장르에서부터 주제 및 모티브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있고 속속들이 새겨져 있다. 나아가 좀 더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이정배가 추구하는 미술과 이진주가 지향하는 미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점에서 이 두 사람은 온전히 각자이며, 개별 예술가 주체다. 그들의 작품 또한 그렇다.
상황이 이와 같은 가운데, 두 작가의 미술을 논하려는 내게 퍼뜩 떠오른 형상이 바로 별자리였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질서로 맺어져 있되,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억압적으로 동일시하는 상황이나 둘 모두의 어떤 개별성이 마모되는 일 없이 공존하는 관계. 각자의 고유성이 결코 배타적인 감정이나 소외의 상황을 유발하지 않고 따뜻한 거리감(이는 분명 모순이지만, 우리는 이 같은 존재 상태를 모르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위해 모른 척 해주기 같은 것) 속에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 나는 이정배와 이진주 작가가 그런 별자리 관계로 있으며, 그 둘의 미술도 그런 관계 속에서 출현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글은 이정배의 미술, 이진주의 미술을 각각 논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명시적으로든 유추적으로든 두 사람/두 미술을 억지로 접합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2. 이정배의 경우: 욕망을 말하거나, 욕망에 대해 대화하거나
이정배의 최근 작품들에서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원해서 원래 있던 존재의 상태를 변질시키고, 왜곡하고, 재조립해가는 오늘 여기 우리 자신의 세태에 대한 문화 비판인 것으로 보인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정배의 미술은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는 방법과 방식에 관한 연구이며 욕망이 만들어낸 풍경과 장면이 관련된 작업”이다. 그러니까 이 작가의 작업 의도는 자연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이 어떤 방법과 방식을 개발해 자연에 그것을 행사하며, 그렇게 해서 우리 앞에 어떤 풍경과 장면이 현실화되는가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고도화될 대로 고도화된 지금 이곳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이정배 작가의 주제는 그리 낯설거나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비단 그 뿐만 아니라 동시대 다수의 작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미적 형식을 통해 작품으로 구체화하고 있어 감상자에게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형상이 떠오르는 화두다. 예컨대 어느 작가는 서울 강남의 초고층 빌딩이 늘어선 거리의 눈부시게 화려하고 가상현실처럼 매끈한 풍경을 거대한 크기의 사진으로 제시하며 자본주의 욕망을 말한다. 또 어떤 작가는 그와는 정반대로 한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인 싸구려 플라스틱 공산품, 재개발 지역의 버려진 물건들, 변두리의 너저분한 풍경과 인물 군상을 짜깁기 조각(assemblage)으로 만들어 우리 욕망의 세련되지 못한 취향을 풍자한다. 일견 이정배의 작품들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특히 그의 전공을 모를 경우, 또 그의 사진과 조각 작품들을 개념적으로만 따질 경우에 그렇다.
이정배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현재 작가가 최종 작품으로 제시하는 형식은 사진과 조각이다. 현대미술을 하는 많은 작가들이 특정 장르나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장르와 장르를 교차하고, 매체를 다원적이며 복합적으로 채택한다는 점에서 이는 별로 특이한 사항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이정배의 사진과 조각은 앞서 언급한 작가의 주제의식을 동양화의 전통적인 미적 인식과 이미지 구축의 원리 및 방법론에 입각해 정교화하고, 그것을 다시 구체적인 삶의 현상에 대응시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변별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첫째, 전통적으로 동양화가 자연을 중시하고 단지 자연의 외양 묘사를 넘어 그 대상의 본질을 그림에 담아내는 일을 최고의 과제로 한다고 할 때, 이정배의 사진과 조각 또한 그 미적 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더 잘 통찰하고 그 통찰의 내용을 작품으로 가시화하기 위해 자신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본주의적 풍경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그 조명은 셋째, 수묵화의 고아한 정취를 살려주는 먹과 붓의 표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사진을 통해서, 또는 여러 가지 형상 및 의미를 입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조각을 통해서 이뤄진다. 분석하자면 이와 같은 개념적인 단계를 따라 이정배의 최근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정배 미술의 그 같은 특성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은 <꿈에 그린>, <래미안>, <푸르지오> 같은 사진들이다. 제목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추측했겠지만, 작가는 이 사진 연작을 통해 어느 때부턴가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의 부(富)를 상징하는 용어가 된 아파트들의 이름을 빌려 자본주의적 욕망의 풍경을 보여주려 한다. 이런 내용은 말로 하면 흔한 문화 비평이 된다. 하지만 이정배의 사진에는 다소간 우리 사고의 상투성을 깨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피사체의 대상이 아파트가 아니라 서울 시내 산들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래미안>은 서울 홍은동 힐튼호텔과 현대 아이파크아파트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바위산을 웅장하게 보여준다. 정작 래미안아파트도 아이파크아파트도 일절 보이지 않고, 암벽이 기세 좋게 전면화 된 사진작품 <래미안>은 매체만 다를 뿐 마치 중국 명대 문인산수화의 기개와 절도를 잇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그런 감흥에 젖어 사진의 표면을 눈으로 완상하다보면 문득 우리는 오른쪽 가장자리에 한자로 쓴 ‘來美安’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작가의 비판적 의도가 새겨져 있다. 즉 동양화를 보듯이 자연 풍경을 완상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소위 ‘아름답고 편안한 거주(來美安)’라는 미명 아래 고급 아파트를 부의 품목으로 소유하는 꿈, 그 동시대 자본주의적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自然)’을 우스꽝스럽고 기괴하게 해체해버렸는지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분명 동양화 교육을 받고, 얼마간 그러한 세계관의 영향 아래서 자연과 인간을 사고하는 작가가 현실에서 포착해낼 수 있는 이미지이자 메시지다. 물론 그 방식과 내용이 쉽고 단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헌데 작가의 사진 작품 중 <설악>, <용대리>, <울산바위>는 그 쉬움과 단순성을 넘어서는 면모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 사진들은 앞서 소개한 사진들보다 시각적으로나 전달 내용으로나 더 간명하다. 일견 테크닉이 뛰어난 사진가들이 산악풍경을 스펙터클하게 찍은 사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의미의 덫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거칠고 웅장한 산세(山勢)를 따라 아주 미약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폭포다. 분명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 정도로 전체 화폭의 규모로 보면 터무니없이 가늘고 미약한 그 폭포가 바로 작가의 핵심 주제가 내장된 곳이다. 이정배는 설악산과 그 근처에 위치한 용대리, 그리고 국립공원인 울산바위를 마치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금강전도(金剛全圖)>나 <박연폭포>, 또는 김홍도의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의 일부와 유사해 보이게 사진으로 재현한 후, 그 위에 아주 가늘고 엷게 하얀 선을 그려 넣어 폭포를 만들었다. 작가에 따르면 자주 지나다녀 익숙한 마을 용대리의 ‘매바위’라 불리는 곳에 관광객을 유치할 요량으로 인공폭포가 만들어졌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정배는 그 발견을 계기로 이상향을 추구했고 그 이상향의 시각적 구현물로서 산수화에 폭포를 그려 넣었던 과거 동양화 이념의 지금 여기 세속화 버전 혹은 그 유토피아 정신의 자본주의적 실현을 사진과 그리기를 결합해 조명해내게 됐다. 그 빛은 앞서 <래미안>처럼 직설적으로 작가의 비판적 의미를 비추지 않는다. 대신 감상자로 하여금 전통과 현재를 잇고 있는 우리의 미의식과 오래된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고, 또한 그 시간과 문화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소여(所與)’를 ‘물신화’하는 풍경을 마주하도록 돕는다.
다른 한편, 위에서 강조했다시피 이정배는 동양화를 원천으로 하는 작가인데 그의 작업 범위에는 조각이 포함돼 있다. 개념 및 주제의식 면에서 이제까지 우리가 논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하는 그의 조각은 작업의 방법론적 측면에서 그의 사진 작업들과 분기(分岐)한다. 작가의 표현을 인용하면 ‘썰어오기’와 ‘도려내기’가 그 작업 방법의 요체다. 이정배의 조각 작품 구조가 단적으로 이 사실을 보여주는데, 예컨대 <컬렉션(collection)>과 <설악스튜디오>를 보면 산의 한 단면을 케이크 조각처럼 세로로 썰어낸 모습 또는 산꼭대기의 일정 부분을 가로로 도려낸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특정 산의 형세로부터 상상적으로 썰어오거나 도려낸 모양새의 조각이 보여주는 세부 풍경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 섹슈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자, 탱크, 과거 중국 귀족들이 자신의 정원을 꾸밀 때 반드시 포함시켰던 기암괴석, CCTV 등 잡다하면서도 서로 이질적인 형상들이 장난감 레고처럼 썰어오고 도려낸 산의 껍데기 위에 조립돼 있다. 그것은 사적인 쾌락의 추구와 은밀한 부의 남용에 젖은 우리시대 사람들의 허구적 욕망, 자연을 결코 어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보지 못하고 당연히 인간의 도구 내지는 소유물로만 여기는 우리의 무지몽매에 대한 우화다. 이정배의 조각은 그의 사진 작품들과 더불어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우리 욕망이 빚어내고 있는 풍경을 가시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의미를 획득하고자 한다. 그 의미는 때로 감상자에게 내놓는 작가의 명시적이지만 흔한 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또 때로는 상호 발견과 추리의 묘미가 있는 대화이기도 하다. 두 번째 경우가 더 흥미롭고 가치 있는 현대미술의 방향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작가 이정배에게 그 점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제안을 통해서가 아니라 작가가 몸소 찾아야 할 작업의 경로 중 한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3. 이진주의 경우: 사물, 풍경, 한 여자, 그리고 감상자가 연합하는 회화
풀밭 위를 나뒹구는 휴지조각, 무성의하게 세워진 공사장 가림막, 재가 된 모기향, 다 먹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포도 줄기, 널브러진 속옷, 나뭇가지에 걸린 검은 비닐봉지, 무성한 잡초, 흐트러진 이불 따위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거기에 어떤 감정이 깃들어있으리라 여기기도 어렵다. 일상생활에서는 말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쉽게 소비하고 항상 마주치는 그것들에 인간적인 의미가 포함돼 있지 않으며, 그것들에 당연히 일말의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물들을 만만하게 대하고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물들이 그림의 공간에 배치돼 있을 경우, 정교한 묘사를 통해 화면에 존재감 있게 재현돼 있을 경우, 특히 그것들이 그림 속 여러 다른 모티브들과 주의 깊게 어우러져 하나의 장면을 이루고 있을 경우에는 어떤가? 그럴 때 그림 앞에 선 우리는 소소하고 하찮은 그것들을 비범하게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의미의 해석을 시도하며, 감정적으로 교감하려 애쓰기 마련이다.
이진주의 <경계의 섬>, <눈물>, <눈물의 경로>, <맨들> 같은 작품이 바로 감상자인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자극하는 힘을 가진 그림들이다. 위에 예시한 것과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어찌 보면 추레하기까지 한 사물들이, 우리의 흔한 삶의 풍경을 뚝 떼어놓은 것 같은 그림 속 공간을 배경으로 섬세하게 자리 잡고 앉아 알 듯 모를 듯한 기분을 꾀어내는 힘. 이 점이 이진주의 그림들을 단순한 삽화가 아닌 미술로 승화시키며, 그 그림들을 그것을 그린 이의 단순한 자기 고백에 귀속시키지 않고 감상자인 우리의 미적 경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이진주의 그림들은 아주 많은 것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해주고, 우리에게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그 가시적인 것들과 들을 수 있는 내용은 고정돼있지 않다. 그림이 추상적이라거나 표현이 모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경험 현실의 구체적인 물건과 풍경과 인물을 모티브로 취해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낸 것들이며, 표현은 직접적이고 명료하다. 예컨대 <눈물>은 그 제목만큼이나 명시적으로 울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고, <앞 집>은 벽돌로 지은 한국식 단층 주택과 옥상 풍경을 잡다한 사물 묘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진주의 그림에서 보고 듣는 것들이 특정하게 고정되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그림의 요소들이 서로 서로 짜여서 전체 화면을 이루어낸 원리를 우리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그 그림들이 잠재하고 있거나 감상자의 상상을 통해 유발되는 내러티브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이 단일하게 결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요컨대 작가가 자신의 제작 의도를 작품을 통해 과시하지 않는다는 뜻과 통하며, 반대로 감상자가 작품 향유(감각적 수용만이 아니라 해석, 추론, 지적 재구성까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진주의 회화를 알레고리(allegory)로 읽을 이유가 여기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레고리는 상징과는 달리 기의(signifier, 의미)와 기표(signified, 의미를 드러내는 것)의 관계가 유동적인 수사법이다. 예컨대 상징은 기표 하트(♡)와 ‘사랑’이라는 의미를 하나로 고정시키지만, 알레고리는 그런 고정된 관계 또는 그런 안정적 독법을 지양한다. 나아가 애초 그 같은 관계나 독법을 회의적으로 만든다. 때문에 알레고리에서는 기표와 기의를 구성하는 이의 입장이 열려있기 마련이며, 그 알레고리를 풀이하는 이의 개입 또한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이진주의 대부분 그림들이 이와 같은 알레고리적 속성을 띠고 있지만, 특히 최근작 중 <경계>가 대표작으로 꼽을만하다.
처음 <경계>를 보았을 때, 내가 맨 먼저 떠올린 것은 뒤러(Albrecht Dürer)였다. 북구 르네상스미술의 대가인 바로 그 뒤러였으며, 그가 그린 자화상과 동물화 같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진주의 <경계>는 뒤러 특유의 회화 미학이라 할 만한 요소들, 이를테면 담백한 화면 처리와 정교한 세부 묘사법이 두드러지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경계>가 뒤러의 작품 중 하나를 전거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만큼 <경계>에 그려진 형상들이 뒤러의 그것을 환기시켰다. 예를 들면 벌거벗은 채 입에는 마스크를 쓰고, 한쪽 가슴에는 모유 착유기를 달고, 한 손에는 생선 머리를 든 채 다른 한 손에 든 포도 알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림 속 여자의 모습에서 나는 뒤러가 1498년에 그린 무표정한 얼굴의 <자화상>을 떠올렸다. 또 <경계>에서 검은 날개를 펼친 채 병에 거꾸로 처박힌 새의 형상은 뒤러의 수채화 중 <카나리아 날개>를 유추케 했다. 하지만 사실 이 같은 연상 작용은 실제로 이진주의 그림과 뒤러의 작품이 시각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해서가 아니라 나의 지각이 재구성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진주의 그림이 알레고리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할 때,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먼저 이처럼 그린 이를 벗어나 보는 이의 편에서 여러 경로의 감각적 즐기기가 실행된다는 점이다. 혹자는 그 즐기기가 감상자의 문화예술 훈련의 수준이나 지적/미적 판단 능력에 따라 차별적인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진주는 자신의 그림들에 소박한 삶의 세부, 경험적으로 낯설지 않은 풍경, 누구나 각자의 마음으로 볼만한 공감대가 큰 분위기를 담아내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정말 우려에 그친다. 작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삶은 스쳐지나가지만, 기억은 머무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잘한 삶의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이, 자신의 몸으로 겪은 사건과 풍경을 그 비슷한 이미지와 연결 지어 볼 능력이 없는 이, 자기 기억에 새겨진 감정 상태를 그림과의 조우를 통해 자기 인식할 수 없는 이는 없거나 극히 드물다.
작가의 <모든 입 다문 것들의 대화>가 역설적인 형상으로 말하고 있는 바, 혹은 우리에게 알레고리적 해석을 부추기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투명 공간에 정갈하게 개켜진 이불 위로 한 여자가 마치 자궁 속 태아가 그러듯이 온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 위로는 아기 장난감 모빌과 마이크가 걸려있고, 주위에는 마치 이불이 대지라도 되는 양 잡풀들이 자라나 무성하다. 언뜻 이 그림은 닫힌 공간과 폐쇄적인 자세의 인물 때문에 극단적인 고립을 주제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가 또한 이 그림에 대해 “내부로의 전환을 위해 침잠하다 보면 그 시작점에서 느끼는 장소와 닮은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 미뤄 <모든 입 다문 것들의 대화>는 매우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며, 소통 불가능한 주관성(subjectivity)을 주제화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각자를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나, 즉 주체(subject)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 같은 주관성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그리고 그 주관성은 내가 갖고 있는 것처럼, 당신도, 또 다른 당신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알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진주의 그림은 알레고리적이다. 즉 작가가 이미지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내용이 존재하되, 그 내용이 작가의 생각과 마음에 고정되지 않고 보는 이 각자의 주관성과 만나 자의적이고 다양한 즐김을 발생시키며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다음, 이진주의 그림에서 알레고리는 감상자가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즉 해석하는 차원에도 해당한다. 좀 전에 서술한 <경계>와 <모든 입 다문 것들의 대화>에서 모티브들은 시각적 구성 상 긴밀하게 엮여 화면에 배치돼 있지만, 의미의 구성은 비의적이고(esoteric) 파편화돼 있다. 그 그림 전체 또는 그 그림의 여러 사물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지, 어떤 내러티브를 가시화할 것인지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제작 단계부터 있었을 것이다. 혹은 한 개인으로서 이진주가 삶을 살아오면서 겪었을 다종다양한 경험들, 때로는 입을 다물어야 할 만큼 고통스럽거나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기이한 경험의 순간들을 원천으로 할 것이다. 작품은 그간 작가가 기억과 성찰 활동을 통해 그 원천으로부터 길어 올려낸 것 가운데 그렇게 가시화된 이미지들일 것이다. 하지만 감상자의 자리에서는 그 내용이 투명하게 읽히지 않고 오히려 퍼즐 맞추기처럼 그림의 세부를, 이미지의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고 잇대서 언제고 다른 의미로 생산할만한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경계>나 <모든 입 다문 것들의 대화>를 비롯해 이진주의 그림들에 대한 나의 독해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해석일 뿐 작가의 것도, 그 작품을 보거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이진주의 그림들이 담고 있는 알레고리적 성격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이진주의 그림을 동화책 삽화처럼 단선적이고 설명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있지 않다. 동시에 작가 이진주가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고, 왜 이러저러한 일상의 사물들과 풍경과 한 여인(아마도 작가 자신일 테지만)을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지, 그렇게 해서 자기 그림에 어떤 고백을 털어놓고 싶은가도 미학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 논의는 종종 정신분석학과 미술비평의 이름 아래 행해지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비망록을 다시 받아쓰기에 가깝거나, 이미지에 대한 미적 경험을 버리고 자기 수다에 빠지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그보다 작가의 예술적 성취 면에서든 감상자의 미적 향유 면에서든 더 중요한 점은 이진주의 그림들이 그 그림을 보는 이와 연합해 다의적인 의미를, 복잡다단한 감정을 빚어낸다는 데 있다. 작품 홀로 외떨어져 있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교차하는 장소. 얼음처럼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기 과시적인 감정 표현도 없이 서로의 감정 상태가 교우하는 장소. 이진주의 그림들은 그런 곳이다.
강수미(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Who is Looking For What?
- <Duo Exhibition of Lee Jeong Bae and Lee Jin Ju: Paths of Clues>
1. Prerequisites
‘Two’ can be an addition of one and another one. ‘Two’, on the other hand, can be the coexistence of one and another one.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the first and the second sentence is whether or not it is ‘addition’ or ‘coexistence.’ It is believed that making a harmonious unity of the two is ideal among all the possible relationships they could have, because the unity is presumed to contain no conflict, clash or contradiction – a feasible and positive thinking, indeed. And yet, there is a possible following case that must be kept in mind: when unity is to be forged among two different things, the possibility where each difference, uniqueness and heterogeneity are to vanish in the process of unity, or the risk where one might be dominated by the other cannot be ignored. In this sense, what would be a favorable relationship besides the seemingly harmonious unity among the all the possible mutual relationships? It is the relationship to coexist where one and the other maintain each of the individuality and coexist at the same time. In other words, it is the relationship of ‘coexistence’ just like constellations that exist per se which cannot be substituted or reserved by any others but exist as forms arranged in mutual relationships.
I started writing this article with the relationship of one and the other, because there is a prerequisite given to me that artwork of two artists, Lee Jeong Bae and Lee Jin Ju, is to be discussed here in a single writing. The prerequisite is that the two artists will have an official duo exhibition at gallery SoSo located in Paju, Gyeonggi Province. Unofficially though – I don’t know whether I could call this ‘unofficial’ but when ‘official’ here means the official aspect of the artists’ creation and exhibition activities, the two artists are a married couple. The two facts are not as simple as they seem. First, in that looking at two solo exhibitions of one artist is starkly different from looking at the duo exhibition of two artists, ‘Duo Exhibition of Lee Jeong Bae and Lee Jin Ju’ already takes the form of a certain direction of appreciation and discourse. Second, the fact that they are a married couple does so in that it requires one to inevitably look into the art world of each artist and consider the relationship of their mutual influence. As such, since there are such prerequisites in appreciating and critiquing artworks, it seems natural to group the artworks of the two artists. However, the two have completely different art worlds, and the difference is broadly spread and intricately inscribed throughout their media, genres, themes and motifs. In a broader sense, the art that Lee Jeong Bae and Lee Jin Ju seek for is fundamentally different, so in this sense, the two are wholly separate beings and artists. So are their artworks.
Given such prerequisites, the image that immediately hit me as I was about to discuss their art was constellations. They are in an inseparable order, but coexist so that one does not dominantly identify the other, or individuality of the two is not worn out, and each individuality does not any exclusive sentiment or alienation but mutually respect one another in a warm sense of distance (this is contradictory, but one knows that state of such existence. For instance, it is like knowing a certain fact but pretending now to know it for the sake of the other person). Therefore, this article will take the form of discussing the art world of each artist, and throughout the course, not nominally nor analogically combine the two people/art worlds whatsoever.
2. Lee Jeong Bae: Expressing Desire or Talking about Desire
In recent works of Lee Jeong Bae, the core theme seems to be the cultural criticism of today’s world and the current trends that one confronts where he or she consistently desires for something, so modifies, distorts or reassembles the state of being. For a better understanding, according to Lee Jeong Bae, “Art is a research on methods and ways of possessing the nature and a work associating the landscape and scenes created by one’s desire.” In other words, his artistic intention is to show how humans’ desire to possess the nature exercise it in the nature by developing certain methods and ways via artworks to reveal what landscape and scenes unfold before one. Of particular note, in the current world of Korea where capitalism has reached its peak of sophistication, his theme is nothing exotic or distant. Moreover, many of his contemporary artists, just like him, take interest in the topic and seek to specify it in artworks through the artistic forms, so even the observers can easily come up with a related image. For instance, one artist expresses the capitalistic desire by portraying the glamorous and virtual reality-like sleek landscape of streets dotted with high rise buildings in Gangnam, a posh are in Seoul, into mega-scale photography. By contrast, another artist satirically depicts one’s unsophisticated desire in the form of assemblage – cheap plastic manmade goods, the symbol of the Korean capitalism, thrown-away goods in areas that undergo redevelopment, and the dirty-looking scenes and people in outskirts. Lee Jeong Bae’s works could look this way, especially when one does not know his major and approaches his photography and sculptural works conceptually alone.
Lee Jeong Bae majored in Eastern paintings, but the forms he proposes for his final works are photography and sculpture. This could be of no big deal in that many contemporary artists flexibly crisscross different genres beyond certain genres or media, and multi-dimensionally and compositely adopt media. Then there is uniqueness in that his photography and sculpture sophisticate the aforementioned thoughts of his according to the traditional aesthetic perception and image set-up principles and methodologies of Eastern paintings, and it is recreated in the specificity of life. For instance, given that Eastern paintings traditionally focus on the nature, and prioritize the act of putting in the essence of the objects beyond the mere portrayal of the nature, his photography and sculpture are also based on the very specific aesthetic concept. However, he critically sheds light on the capitalistic landscape he himself confronts in order to gain a better insight on the reality where he lives in and visualizes what he perceived into works. Then, thirdly, he sheds light on it not via the expression of Indian ink and brush strokes that vividly reveal the antique vibe of Indian ink paintings, or via the sculpture with which to three-dimensionally establish various images and meanings. I think that he could create his latest works through such a conceptual chain of steps.
Lee Jeong Bae’s such artistic features can be easily found in photographical works like <Dream & Green>, <Remian> and <Prugio>. As the titles imply, he tends to exhibit the landscape of capitalistic desire in the name of apartments, which have become a symbol of wealth for the middle class in Korea from sometime in the past through these serial works. This could serve as a mere cultural criticism. However, his photography shows the think-outside-the-box mentality, which reveals that the objects targeted are not the apartments but mountains in the downtown Seoul. For instance, <Ramian> grandly shows a rocky mountain that surrounds Hilton Hotel in Hongeun-dong, Seoul and I-Park Apartment. <Ramian> that shows no Ramian Apartment or I-Park Apartment since only the rocky wall is grandiosely shown seems to carry on the spirit and moderation of water paintings of renowned artists of China via a different means. And yet, as an observer’s eyes move towards the surface of the photography in the same mood, there are Chinese characters on the far right: ‘來美安’ that is with the artist’s critical intention. In other words, it is to show a dream of possessing a high-premium apartment as an item of wealth in the name of ‘beautiful and comfortable residence (來美安)’ without being complacent about appreciating the natural landscape as if to look at an Eastern painting. It is also to reveal how the contemporary capitalistic human desire insanely and bizarrely disintegrated “the nature whose Chinese characters mean ‘the things that exist as they are’.” This is both an image and a message where one that mulls over the nature and human beings under the influence of such a view and a certain period of education on Eastern paintings in the world of reality. True, the way to do so and content within are easy and simple.
Among his photographical works, <Seorak>, <Yongdaeri> and <Wulsanbawi> show an aspect that goes beyond the very easiness and simplicity. Interestingly, these photographs are succinct in the visual sense and message being portrayed compared to the previous ones. These do not look that much different from spectacle photos of mountain landscape taken by technically competent photographers. However, here exists a trap of meanings, that is, the waterfall that slightly falls down along the rough and grandiose mountain-scape. The very waterfall that is extraordinarily thin and weak in terms of the scale as to the extent of being unnoticed by passers-by is where Lee Jeong Bae’s key theme resides. Lee Jeong Bae represented Mountain Seorak, the nearby Yongdaeri and the National Park of Wulsanbawi similar with parts of Jeong Seon ((1676–1759), a well-known Korean landscape painter, also known as by his pen name Gyeomjae (meaning humble study)’s <Geumgang jeondo>, landscape of Geumgangsan in North Korea, <Bakyeon Fall> or Kim Hongdo’s <Geumgangsaguncheop>. And then, he drew a very thin white line on top to portray a waterfall. According to Lee, he happened to find the fact that an artificial waterfall was made to attract tourists in a place called ‘Maebawi’ in Yongdaeri, a village he was familiar with as he passed it by often. Since the discovery, he has sought after idealism, and he ended up shedding light through the combination of photography and painting on the materialistic version of the Eastern painting concepts or capitalistic realization of the utopianism. The light does not shed light a critical light of the artist as in <Ramian>. Instead, it enables observers to think about the aesthetic sense and long-kept desire that connects the traditions and the present, and to encounter the landscape where the given, or the nature, is turning into a fetish according to the human desire amid changes of temporal and cultural conditions.
On the other hand, as emphasized above, Lee Jeong Bae’s work scope includes sculpture although his origins are in the Eastern paintings. His sculpture that is in the same aspect with the aforementioned message and context in terms of concept and themes diverge from his photographical works, methodologically speaking. According to him, ‘cutting’ and ‘excising’ are the key methods applied. Lee’s sculptural structure starkly shows this fact. For instance, <Collection> and <Seorak Studio> show one facet of the mountain like a piece of cake being cut vertically, or a horizontally excised part from a mountain summit. However, the specific landscape imaginatively cut from a certain mountain shape or shown by the excised piece does not exist in the nature. For instance, a huge building whose identity is not known, a sexually posed woman, a tank and strange rocks and bizarre stones that used to be always included when Chinese noblemen of the past included in decorating their garden and CCTV (hidden surveillance cameras) as heterogeneous images are assembled on the surface of a mountain excised and cut out like Lego pieces. It is an allegory on the fictional desire of the contemporaries immersed in the pursuit of their private pleasure and secretive abuse of wealth, and one’s stupidity whereby the nature is not regarded as an independent and flexible being but as a means or possession of humans. Lee’s sculpture seeks to acquire meanings by visually making a landscape generated by the extremely realistic and materialistic desire of humans, along with his photographical works. The meaning is represented as the artist’s explicit and yet common answer to observers. However, it is a conversation of mutual discovery and charm of reasoning. The latter case looks like a more interesting and invaluable direction of the modern art, but this is not something that is to be forced upon Lee Jeong Bae. It is because it is a place of choice among different paths that the artist has to find instead of through the suggestion of someone else.
3. Lee Jin Ju: Paintings where the Objects, Landscape, a Woman and Observers are United
Nobody would try to find a meaning in the following miscellaneous, let alone believing that there would be some sentiment in them at least in one’s daily life: tissue pieces that run around a grass area, a disorderly standing fence wall on a construction site; mosquito incense that turned into ashes, thin and fragile grape stems after grapes are eaten away, underwear garments scattered in a room, a black plastic bag hanging on a tree branch, mushrooming weeds and unorganized blanket sheets. Since one believes that the banal and easily consumed goods have no human sense, and have no emotions, one ends up regarding as things that are of no value, easily ignoring them. However, what if these objects are arranged in a space of pictures? What if they are represented with a sense of presence on a screen through sophisticated portrayal? And what if they form a single scene through harmony with many other motifs in the picture? Then, one starts to look at the simple and banal things in a different way as he or she stands before a painting, trying to interpret their meanings and emotionally communicate with them.
Lee Jin Ju’s works like <Island of Boundaries>, <Tears>, <Paths of Tears> and <ManDle> are the paintings that stimulate one to do such things as observers. Objects that are as banal or even shabby as the above examples are subtly placed against a space in paintings as if a part of our banal life facets is scooped out, generating some peculiar sentiments. This catapults Lee Jin Ju’s pictures as artworks instead of mere illustrations, expanding the paintings as one’s aesthetic experience without constraining them into a mere self-confession of the artist that painted them.
Lee Jin Ju’s paintings seem to let one see much and tell one a lot of stories. Then, what is seen and heard is not fixated not because the paintings are abstract or expressions are obscure. Rather, her paintings are the specific forms driven by motifs of specific objects, landscape and humans in daily life. Here, the expression is straightforward and clear. For instance, <Tears> shows a literally weeping woman as the title implies, while <The Opposite House> is a portrayal of a one-story Korean-style house and the roof landscape through the depiction of the miscellaneous. Nevertheless, why is it that what is seen and heard in her paintings is not fixated? It is because elements in the paintings are interlinked to form a whole screen whose mechanism is not known. More accurately speaking, the narrative where the paintings are dormant or induced by observers’ imagination is not uniformly determined. This means that the artist does not boast her artistic intentions through works, while meaning that observers can relish the freedom of appreciating the artworks (not only the sensitive acceptance but also interpretation, reasoning and intellectual reconfiguration). This is why Lee Jin Ju’s paintings are to be seen as ‘allegory.’
As is well known, allegory is a rhetoric in which the signifier and the signified have a flexible relationship unlike symbols. For instance, in symbols, a heart (♡) as the signified and ‘love’ are fixated as a single meaning, while in allegory, this kind of fixed relationship or stable reading is avoided. Moreover, this type of relationship or reading is regarded doubtful. As such, in allegory, one that composes the signifier and the signified has an open position, those that read the allegory actively intervene there. Most of Lee Jin Ju’s paintings contain such an allegorical feature, especially her recent work of <Boundaries>.
When I first saw <Boundaries>, it reminded me of portraits and animal paintings of Albrecht Dürer, the renowned master of Nordic Renaissance. It is because Lee’s <Boundaries> was a painting with Dürer’s typical artistic aesthetics where a bland background and sophisticated specific portrayal stand out. I even thought that <Boundaries> was influenced directly by one of Dürer’s works since images in <Boundaries> reminded me of those of Dürer. For instance, Dürer’s <Self-Portrait> with an aloof-looking face painted in 1498 came to mind when I saw the woman in Lee’s picture that keenly gazes at grapes on one hand with the other hand holding the head of a fish. Moreover, the image of a bird squeezed upside down in a bottle with its black wings unfolded in <Boundaries> were reminiscent of <Wings of a Roller> of Dürer among his water paintings. However, this type of reminiscence is not due to the visual analogy or similarity of paintings of Lee and Dürer but a result of my perception in a reconfigured way.
Given that Lee Jin Ju’s paintings have an allegorical feature, one has to recognize that sensitive relishing of various paths in the perspective of observers beyond those of the artist takes place. Some might be concerned that this appreciation could be discriminatory depending on the level of cultural/art training or intellectual/aesthetic judgment skill. However, since Lee depicts in her paintings the mundane specifics of life, empirically familiar landscape and the sense of consensus relevant to all, that concern ends up as a mere concern. Lee said, “Life is passing by but memories stay.” In this sense, there is hardly anyone that has no banalities of life that is incapable of associate the events and landscape he or she has undergone with a similar image or that cannot perceive that state of sentiment inscribed in his or her memories through the encounter with pictures.
It is the message of <Conversation of All Those Whose Lips are Sealed> of Lee in the form of a paradoxical image. Or it is the message that induces allegorical interpretation. In the painting, a woman crouches her body like a fetus in a uterus on a neatly folded blanket in a transparent rectangular space. On top of it, a baby mobile and a microphone are hanging, and around them are weeds and grasses as if the blanket were a wild land. At a single glimpse, this painting’s theme seems to be extreme isolation because of the closed space and the figure in a reclusive position. Lee also said on the painting, “Submersion for the sake of inward conversion is a sentiment analogous to a place felt in a starting point.” Given this, <Conversation of All Those Whose Lips are Sealed> could be interpreted to have a very personal, internal and incommunicable subjectivity as a theme. However, what makes me distinctive from anyone else, that is, a subject, is the very type of subjectivity. This type of subjectivity is something that anyone has just like I have. In this sense, Lee Jin Ju’s paintings are allegorical because there is a message that the artist wants to convey along with images, and the message generates and stretches out the arbitrary and diverse appreciation by encountering subjectivity without being fixed upon the artist’s thoughts and mindset.
The allegory in Lee Jin Ju’s paintings is in the form of unfolding or interpreting a story unfolded through the paintings by observers. Motifs of <Boundaries> and <Conversation of All Those Whose Lips are Sealed> are arranged on a canvas as they are visually interlinked, but the composition of meanings is esoteric and fragmented. What stories would be told by the whole painting or objects in a painting, and what narratives would be visualized must have been stuck in her head from the very beginning of production. Or her myriad personal experiences as she led a life, and moments of torture, sadness, solitude and strangeness to the extent of having to seal one’s lips about would serve as the origins of her motifs. He works must have been the visualized images among those that have been scooped from the sources through memories and soul-searching. However, in the perspective of observers, the message is not transparently read: rather specifics of a painting are, as in a puzzle, are crisscrossed and connected to create a different meaning. I was like that too. However, I won’t talk about my interpretation of Lee’s paintings including <Boundaries> and <Conversation of All Those Whose Lips are Sealed>, because it is just my interpretation and not Lee’s or yours as a reader. It is also the virtue of an allegory contained in Lee Jin Ju’s paintings.
Thus, the bottom line does not lie in the fact that Lee’s paintings are not interpreted as linear and explanatory stories like illustrations in a storybook. It is aesthetically never important what Lee underwent in the past, why miscellaneous objects, landscape and a woman (it must be the artist herself) repeatedly appear in paintings, and what message Lee is to confide in through this. This discourse often takes place in the name of psycho-analysis and art criticism, but in fact, it is close to re-writing the artist’s memorandum and falling prey to self-chatting while discarding aesthetic experiences on images. I believe that more importantly Lee’s paintings create multifaceted meanings and complicated sentiments by uniting with their observers in terms of either artistic achievement or observers’ aesthetic appreciation. It is a place where artworks are not isolated and yet quiet and diverse voices overlap, and a place where mutual sentiments encounter one another without the expression of icy cold sentiments or boasting sentiments. Lee’s paintings are like the place.
Kang Sumi(Aesthetician, Art Critic, Research Professor of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