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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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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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별로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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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畵者로서 작업에대한 열망이 적어진 것은 아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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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나의 작업은 볼만한 가치가 있는가?” 혹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따위의 해묵은 논지들 만이 나의 몸속에 녹아 들러붙어있고 명색이 동시대의 화자로서의 고민이나 보다 진취적인 미적탐구에는 역량이 부족함을 우려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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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아직 나에게는 가야할 오솔길이 남아 있다는 것.

 

김을

 

 

김을(b.1954)은 삶의 모든 순간을 치열한 예술 행위로 채우는 작가이다. 실존에 대한 고민과 세상의 근원에 대한 고찰을 멈추지 않는 그의 작업은 예술가로서의 성실함을 반영하듯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원광대 금속공예과 및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금속 디자인을 전공하였다. 1994년 금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OCI미술관, 사루비아 다방, KUNSTRAUME(Cologne), 갤러리 소소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가했다. <My Great Drawings> 등 총 7권의 드로잉북을 출간했다. 2016년 국립현대 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4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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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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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또 서예 작업. 이번에는 그리기-칠하기. 한글 자모를 생긴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조금씩 변형하고, 그것을 조각보와 스테인드글라스 형식에 이입한 다음, 칸칸이 색으로 물들여 가기. 글자는 다만 격자 안에 붙박혀 있고, 대신 색과 색과 색이 어지러이 일렁거리면서 눈을 어지럽힌다. 뜻을 섬기기 마땅찮다. 색 잔치, 색 춤. 글자가 제 뜻을 펴기 고약해진 세상에 글씨는 이즈음 벚꽃처럼 난분분(亂紛紛), 다만 색으로써 세상을 농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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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기가 일찍이 지은 후 절로절로 퍼져 우리 입에 붙은, 저 오래 묵은 노래 <저 부는 바람>(1971) 가사를 그린 것 하나를 빼면, 이번에 전시하는 글·글자·말은 다 현직 대통령의 취임사, 취임 100일 기자회견, 광복절·삼일절 기념사, 신년사 같은 데서 가려 뽑은 것이다. 공직을 떠맡거나 노리는 미치광이들이 앞장서선, 민주주의 사회가 섬겨야 할 말을 죄다 망쳐놓는 바람에 세월은 이미 허망한 것이 되었으니, 여기서 더 뭘 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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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그래도 심기일전, 말이 더럽혀진 풍진 세상이라고 갖다 버릴 수도 없잖은가.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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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량

 

 

 

김학량(b.1964)은 강원도 명주군 연곡면 신왕리, 어느 농가에서 나고 자랐다. 10살에 속초로 이사해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그 다음부터 수도권으로 옮겨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직장도 다니며 큰 뜻 없이 살고 있다. 1998년부터 간간이 미술가로서 작업도 하며 사는데, 굳이 왜 하는가 묻는다면, 조석朝夕으로 싸리비 들어 마당을 쓴다든지 아침마다 일어나 이불 개는, 그런 일과 다름없다고 대답하겠다. 가끔 한강 하류에 나앉아 강바람 쐬며 물 구경하기를 좋아하고, 틈이 안 날수록 ‘산엔 또 언제 가나’ 기다리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