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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 작품전

 

주재환

2009. 8. 29 - 9. 27

몽상의 궤적, 주재환의 유화 
 

갤러리 소소에서 열리고 있는 주재환 작품전에는 유화 44점과 용도 폐기된 종이 팔레트를 활용한 소품 6점, 그리고 이전의 작풍에서 벗어나 새로 시도하는 말풍선 시리즈 1점이 추가되어 모두 51점이 전시되고 있다. 작가는 1980년 미술회관(현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현실과 발언 창립전을 통해 미술계에 입문했는데, 내년에는 현실과 발언 창립 30주년이 되어 동인들을 중심으로 한 회고전 등의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화력 30여 년 동안 작가의 작품 성향은 표현 기법에 따라 혼합재료 작품과 유화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혼합재료를 제외하고 90년대 중반에서 현재까지 제작된 유화만 묶어-미술관, 개인 소장 제외-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기회는 이번 전시가 처음이므로 작가에게도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작가 주재환 하면 초기작인 ‘몬드리안 호텔’ 등과 최근작인 ‘똥값’ 등 비틀기 수법으로 제작된 블랙 유머 풍의 작품이 먼저 떠오른다. 역설과 풍자, 해학이 담긴 경쾌한 작품들에 비해 전통 양식으로 그린 유화에는 어떤 특성이 나타나 있을까. 눈부시게 새 세상을 만들어 가는 디지털 시대에 유통기한이 지난 매체로 보이는 유화는 왜 그리고 있을까. 작가의 유화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이런저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래서 작가와 만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는 유화를 중심으로 작가의 자문자답 형식으로 그 내용을 정리, 요약해 본다.

1. 왜 유화를 그리게 되었는가. 

유년기에 일제시대와 8.15해방을, 곧이어 남북분단을, 소년기에 6.25전쟁을, 청년기에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장년기에는 광주 학살과 군사독재 시절의 격동기를 겪었고, 1960년에 홍익미대에 입학했으나 등록금 부족으로 중퇴했고, 그 이래 생업 현장에서 이런저런 일로 많이 부대끼며 살아왔다. 이러한 굴곡진 과정에서 쌓여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물감의 특성이 궁금해서 유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더디 마르고 끈적끈적한 유화 물감은 가래침에 비유된다. 가슴 속을 뚫어주는 가래침을 내뱉는 것과 끈적한 물감을 캔버스에 계속 덧바르는 일은 그 성격이 비슷하다. 80년대에 몇 점 그렸으나 90년대 중반 이후 집중하게 되었고, 2000년 아트선재센터의 개인전에 혼합재료 작품과 유화를 다수 전시했다.(주재환 작품집. 이 유쾌한 씨를 보라. 2001. 미술문화사. 참조) 

2. 유화와 혼합재료 작품의 차이점은. 

유화는 물감의 배합과 기교에 의해 작품의 성패가 결정되므로 숙련된 솜씨가 요청된다. 그러나 일정 규격의 캔버스와 물감만 사용하게 되므로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기도 하고, 반복해서 그리다 보면 작가도 모르게 인습에 빠지게 되어 생동하는 작품을 내놓기가 어렵게 된다. 미술시장에서 선호되는 종목이 유화이기에 수 십 년 동안 변함없이 동일 양식을 내놓는 유명 작가를 보게 되면 그 끈기에 놀랍기도 하고 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러한 갇힌 틀에서 벗어나려고 최근에 이전과는 다른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혼합 작품은 재료가 다양 다채하고. 작품 규격에도 제약이 없으니 내 적성에 맞는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인쇄물, 지도, 전화번호부, 치즈, 비닐봉지, 쇼핑백 등 갖가지 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에 적합한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고, 내구성에도 안심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3. 유화에서 음울한 느낌의 청색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자연 발생으로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색채 전문가의 분석을 기대하고 있다. 

4. 몇몇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설을 듣고 싶다. 

예를 들어 ‘신호등’의 경우 수차례 개작을 거친 작품인데, 아직도 부족하다. 이 작품은 몸통이 찢어지면서 신호등으로 변신하는 아기 고래를 묘사한 것이다. 자연의 과잉 파괴를 토대로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로 치닫고 있는 현대문명의 실태를 은유해 본 것이다. 카프카의 악몽 ‘변신’의 현대판 변용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k’와 ‘우리들뿐인가’는 광막한 우주공간에서 유영하는 외로운 떠돌이별 지구의 의미는 무엇이며, 인간 존재는 또 무엇인지, 우주가 발생한 원인과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 해답이 있을 수 없는 질의에 대한 내 나름의 형상이다. 

오래 전에 우주선 아폴로 7호에 승선했던 우주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지금 어딘가에서 인간끼리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는 바보짓으로 생각된다.’ 바보짓인지 알면서도 너 죽고 나 살자는 맹목이 변함없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 아닐까. 근자에 번역소설 ‘핏빛 자오선’과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는데, 인류사회의 총체적 파탄을 예감하는 종말론적 상황을 감지하게 된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깨어져 있기에 세상을 제대로 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어느 철학적 사유를 음미하면서 그린 것이 ‘핏빛 자오선’이다. 

5. 소품들 중에 도깨비라는 제명이 비(非)라는 시리즈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불을 끄고 별을 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특정일에 밤 9시부터 5분간 전등을 끄고 밤하늘을 보자는 에너지 시민연대의 별 밤 찾기 운동이 있다. 밤, 신화와 민담과 전설의 고향인 밤은 어디로 갔는가. 

‘기독교 신앙에 비해 이교의 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고,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플루토처럼 운이 좋은 몇몇은 하계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고, 넵툰은 교회 종소리와 풍금소리가 안 들리는 곳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은 별 볼일 없게 되었다. 아폴로는 목동으로 호구해야 했고, 주피터는 토끼털 교역을 하면서 북극 근처에서 털 빠진 독수리와 혼자 살고 있었다. 그중 출세한 신은 머큐리인데 네덜란드에 운송회사를 차리고, 죽은 자의 영혼을 영국으로 보내는 수익성 높은 회사를 창업했다.’ 근 200년 전에 하이네가 조사한 옛 신들의 신상이 이러 했으니 지금쯤은 쓰레기 넝마꾼이 되었거나 인신매매 중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은 산업화와 기독교로 인해 몰락한 신들의 모습이다.(소광희. 무상의 흔적들. 1997. 운주사). 저자의 글을 가다듬어 인용했다. ‘숲 속에서 요정들이 춤을 추고, 물레 방앗간 뒷 뜰에서 도깨비가 웅성거리던 그 밤은 진정 어디로 갔는가.’ 

불빛 공세로 사라져 버린 그 숱한 도깨비 얘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인간과 더불어 한바탕 널뛰던 어릿광대, 도깨비는 무엇인가. 본적지는 한국인 무의식의 깊은 심연. 한국인 특유의 원형. 신출귀몰한 초능력자. 상식의 규격, 일상의 규범, 합리, 논리의 범주 이탈. 절대적 희극, 축제적 웃음. 도깨비는 한국인이 창조한 대표적인 허구. 성격의 다양한 불일치, 야성, 원시성, 충동성, 조야성 등. 도깨비는 막히고 닫히고 굳어진 조선사회를 해방의 공간, 자유의 시공으로 유도한 장난꾼. 도깨비는 사이킥(psychic) 에너지이자 가장 한국적인 그로테스크 그 자체. 책머리에서, 합리를 넘어선 불가사의, 이것인가 하면 저것이고, 저것인가 하면 그것인 게 도깨비라고 해석한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날개를 달다’(1991. 춘추사)에서 핵심 개념만 간추렸다. 

조선 개국의 주역인 정도전은 적막한 유배지에서 겪은 도깨비 얘기를 남겼다. 비인비귀 비유비명역일물(非人非鬼非幽非?亦一物).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고 밝음도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의 물건. 비(非)라는 리듬이 반복되는 정체불명의 존재, 이것이 그가 체험한 도깨비의 정체이다. 도깨비란 작품 제명이 너무 직설적인 것 같아 非로 바꿨지만 뜻은 같다. 도깨비 얘기는 신화, 전설, 민담, 동화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생활에서도 거의 매일 피부로 느끼게 된다. 보통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이나 범죄 뉴스가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의 전시 작품들 모두가 예술성의 성패를 떠나 몽상과 몽환의 세계로 떠나는 ‘도깨비깨도’의 여정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6.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요즘에는 새 작품의 형식으로 만화에 나오는 말풍선에 주목하고 있다. 말,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옛 시조의 한 구절처럼 말이 많아서 탈도 많은 세상.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소리 나는 말은 천장이나 벽면에 달라붙지 않고 아무런 자취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태초에 발생한 말부터 오늘까지 인류가 한 말을 한데 모아 쌓아 올린다면 그 넓이와 높이가 얼마나 될까. 앞으로도 할 말은 얼마나 또 많을까. 쓸 데 있는 말로 여겨 활자로 기록한 책들 역시 그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가끔 들릴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유용하라고 그곳에 진열된 수많은 책들. 그걸 다 읽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왜 읽어야 할까. 아는 것이 힘이니까. 힘은 명예, 권력, 돈. 그 다음은.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현재의 말풍선 계획은 눈에 띄는 음식재료일 뿐 맛있는 요리가 되려면 앞으로 몇 고비는 더 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성공 여부는 미지수지만.

7.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은. 

시여, 이제 나에게서 

너는 떠나다오 

나는 너무나 오래 너에게 붙잡혔었다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불순해졌고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허황해졌다 

너는 이제 나에게서 떠나다오 

일생을 시 창작에 전념해온 시인 구상이 남긴 이 말씀은 바로 나에게 불순하고 허황한 작품 그만하고 떠나라는 충고여서 숙연해지기도 한다. 어찌하면 좋을까. 끝으로 전시를 열어준 갤러리 소소의 금혜원 관장과 정윤주, 이주민 양께 고마움을 전한다. 

정윤주(갤러리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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