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구 목판화전

 

강경구

2015. 5. 30 - 6. 28

강경구의 목판화-모필과 칼 맛이 어우러진 흑백화면

강경구는 1990년대에 인왕산을 비롯해 서울 주변의 산과 일상 속의 사람들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그가 90년대에 그려낸 산 연작은 한국 진경산수의 흐름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인왕산과 서울 주변의 산들을 거칠고 드세게 그린 그 그림은 수묵과 채색이 섞이고 운필의 동세와 힘들이 혼재되어 이룬 드라마틱한 산이었다. 그것은 조선후기 겸재와 변관식, 이상범의 뒤를 이어 이룩한 한국 산하의 전형성을 포착한 성과의 하나로 읽혀졌다. 그가 그린 산들은 이 땅에서 살다간 이들의 숨결과 생애와 목숨의 자락들을 죄다 기억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산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뉘앙스를 가진 산이자 역사적인 공간, 인문화 된 산이다. 당시 그림은 화면을 채색으로 꽉 채울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붓을 사용하여 여러 겹의 갈필로 문지르고 호분을 입혀 두터운 양괴감을 만들어내는 기법이 주종을 이뤘다. 북한산이나 인왕산의 '생동하는 기와 맥'을 포착하려는 작가의 표현주의적 양식은 단지 미술사적인 양식이나 조형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그의 체질과 성향에서 연유한다. 이후 그의 소재는 숲을 거쳐 물, 대지 등으로 이동했고 내용 또한 지극히 내밀한 자전적 소재로 옮겨갔다.

강경구의 그림은 다분히 표현적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표현적'이다. 그림은 작가와 그 상황의 표현이며, 감정이나 정서적 제스처를 방출, 전달하는 시각적 제스처를 흔히 표현주의 미술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 정신적, 영적인 의미를 관련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표현주의적인 작가들은 예술을 개인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 사용하고자 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강경구의 작업 역시 일관되게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고 깨닫고 느낀 것들을 시각화해왔고 이를 전달하는데 적합한 재료와 기법을 다루어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다보니 그는 먹과 채색, 호분을 질료적인 차원에서 거칠고 두텁게 다루다가 아크릴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가 지닌 기질, 정서를 온전히 표현해내는 데는 목판화가 매우 적합해 보인다. 그의 목판화는 모필의 맛이 매력적으로 감촉되며 흑과 백의 단호한 대비, 순간의 단호한 결정으로 판가름이 나는 칼, 그리고 매순간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편린, 그 단상이 도상적으로 압축되어 찍혀 나오는 것이었다. 운필의 탄력적이고 자유스러운 흐름과 먹을 다루면서 체득된 흑백구성, 그리고 전각으로 다져진 사각형 화면처리와 칼의 맛 등으로 인해 이루어진 매력을 접하게 한다. 그러니 목판화는 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잘 해낼 수 있는 매체다. 목판화란 철저하게 나무의 평면성에 기초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스케치가 중요하고 모필로 그려지는 붓 맛이 나는 도상의 힘이 우선한다. 그는 흑백의 구성과 칼 맛을 살리는 일을 핵심으로 여기며 이를 조형적으로, 회화적인 맛이 나게 표현하고자 한다. 그의 판화는 붓이 서지 않으면 판화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 말해준다. 그러니까 그의 목판화는 모필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그려내는 붓 맛이 그대로 칼 맛으로 전이되어 나오는 편이다. 목판의 힘은 칼의 맛에서 발생하는 긴장도에 연유한다. 그는 칼을 통해 그만의 필법, 골법을 만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삶의 체험에서 연유하는 감정이나 정서를 설명적이지 않은 언어로 드러내고자 하고 이를 위해 칼을 댄다. 칼로 나무를 깍아 내는 행위 사이에는 매번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놓여있다. 인생이 그렇듯이 목판화도 동일하다.

그림의 내용은 그동안 해온 회화작업의 연장선들이자 또한 진도 팽목항에서 일어난 세월호의 침몰장면, 서대문형무소풍경, 무료한 일상에서 문득 접한 주전자와 의자의 그 실존성, 작업실 옥상에서 건너편 청계산을 바라다보는 자신,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작가의 얼굴, 나뭇가지에 걸친 새들,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여자, 그 여자의 대책 없이 벌어진 구멍, 암수가 교미를 나눈 후 서로를 잡아먹는 사마귀의 초상, 물속을 헤엄치거나 걷고 있는 사람, 창살에 갇힌 얼굴 등등이 단순하고 명료하게 깎여서 찍혔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한국 사회, 정치 현실과 함께 자신의 일상에서 겪어내 것의 소회로 불려온 것들이고 이를 상기하고 복기한 것들의 도상화, 시각화의 과정을 겪어낸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그리기는 다분히 문인화적인 것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가 목판화만을 가지고 전시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운주사의 해학적이고 무심하게 깎아낸 미륵불을 소재로 한 <애기불>(1993)을 포함해 최근에 제작된 작품이 주를 이룬다. 현대미술에서는 표현주의 작가들이 판화를 주된 수단으로 부활시켰다. 그들은 삶과 자연에 대한 비교적 심오한 이해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물의 내면의 깊이를 창조하고자 판화를 선택했다. 판화 작업이란 가장 응축되고 최소한의 수단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표현주의 작가들의 판화 중에서도 막스 베크만의 경우가 돋보이는데 그는 조각칼로 강하게 파낸 선들로 산마루를 형성하고 이로 인해 강한 음영감을 표현했다. 이 기법을 흔히 '단도의 스케치'라고도 부른다. 그는 이 기법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에 내던져진 인간의 공포, 고통, 속수무책의 상황, 그리고 비애 등을 강렬한 흑백의 대비로 표현했다. 베크만은 당시 세계대전을 통한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고 인간의 생명력에 대한 그의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감성을 적절히 제어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매체로 노동과 참을성이 더욱 필요한 판화에 심취했다고 전해진다. 강경구 또한 그가 겪어내는 일상, 현실 등에 대한 여러 단상과 감정을 표현해내는 수단으로 회화와 함께 목판화를 겸하고 있다. 여기서 매체는 선택적이다. 그는 다양한 양식, 기법을 통해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모필과 종이, 먹, 전각에 친숙한 그에게 이 목판화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합적이면서도 각각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점이 여타 판화가들과 다른 지점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기존 판화가들이 판화 자체의 방법론에 얽매여있는 편이라면 그와는 다른 회화적이며 조형적 맛과 운치로 가득하면서도 예리한 칼, 힘 있는 흑백 구성,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긴장관계(깎아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를 거느리고 있는 판화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판화 역시 회화적인 힘(조형의 힘)으로 충만해야 하며 특히 모필의 맛, 자연스러움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좋은 목판화를 선보이는 작가들은 고인이 된 이상국을 비롯해 서상환, 강경구, 유근택 등이다. 물론 오윤의 목판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강경구는 오윤과 이상국의 목판화 및 독일 표현주의 판화 등에서 자극 받은 것들을 모두 용해해서 그만의 개성적인 목판화를 선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이번 판화전에 출품한 작품들에서 빛나고 있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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