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정

 

권순영

2017. 9. 2 - 10. 1

피, 땀, 눈물, 그리고 끝나지 않는 마지막 성탄

 

“피와 고문과 희생 없이는 인간이 자신에게 기억을 새겨 넣을 수 없었다. 더 없이 소름끼치는 희생과 저당(첫 아기를 바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말할 수 없이 역겨운 신체 조직의 절단(예를 들면 거세), 모든 종교적 의례 중의 가장 잔인한 의식(모든 종교는 가장 깊은 밑바탕에 잔인성의 체계를 지니고 있다) - 이 모든 고통이야말로 기억술의 가장 강력한 보조 수단임을 알아챈 본능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 프레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중에서

 

순영의 그림에는 꽤 많은 인물과 구체적으로 지시하기 어려운 어떤 장소가 등장한다.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이 묘사되는 경우는 적다. 몇몇 인물은 지난 세 번의 개인전에서 조금씩 더 구체적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특히 작가가 구원의 상징이라 부르는 미키마우스를 닮은 날개옷처럼 보이는 성의(聖衣)를 입은 이 인물은 미키-마리아라 이름 붙여도 어색함이 없을 듯하다. 그림의 배경에는 자주 눈이 내린다. 트리의 장식물처럼 동그란 인공적인 눈부터 가끔은 체리 열매가 눈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 그림들을 본 누구라도 성탄절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의 탄생, 거룩함과 경외감이 펼쳐지는 기적 같은 순간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실망할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의 그림들은 친근하고 재미있는 만화 세계의 일부를 발췌한 것처럼 느껴진다. 만화로 표현된 폭력이 대부분 덜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순영이 만들어낸 세계와 인물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의 삶과 행동에 대한 번뇌가 일어났다. 희생자로서의 나, 피해자로서의 나. 슬픔에 빠진 나의 얼굴과 고통에도 꿋꿋이 버티려는 내 얼굴에서 흐르는 시각적 기호가 되어버린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떠올랐기 때문이다. 순영의 그림에는 가해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번뇌의 시작은 아마도 그림에 없는 가해자 중 한 명이 바로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떠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순영은 이처럼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게다가 폭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는 단서나 인과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어떻게 그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에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하여 이전 개인전들을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와 비평가라는 관계에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작가의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를 때 느껴지는 친근함과 익명성이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를 ‘순영’으로 호명하기로 했다.

 

첫 번째 개인전<Flashback>(2007)은 어린 소녀의 이야기였다. 소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 무엇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자아를 가진 인물이다. 전시 제목이 지시하듯 이것은 소녀의 회상에 관한 것이었다. 어린 소녀는 작가 자신의 재현물이라기보다는 그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형상일 것이다. 소녀는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표출하지 못 한 감정의 응어리가 잉태한 생명이다. 첫 전시의 소녀의 모습이 거칠고 투박한 ‘삽화적’ 일화로 이뤄졌다면 두 번째 개인전 <뭇웃음>(2011)에서 소녀는 천국과 연옥 사이에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전시 작품 가운데 “가정생활”(2009)과 “가족”(2010)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세로로 긴 화면에 그려진 “가정생활” 중앙에는 성탄절 트리가 위치하고 있다. 성탄절 트리는 에덴동산의 대리물처럼 보이고 사방이 막힌 천국의 정원 바깥에 피어난 무지개 주변은 죽음과 키스한 절단된 시체와 잘린 머리를 탐욕스럽게 욕망하는 인물들의 표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트리 아래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하혈을 하고 있다. “가족”(2010)의 배경도 성탄절이다. 먹빛으로 까매진 하늘에는 트리를 장식하는 원형의 볼이 쏟아진다. 눈물을 흘리는 소녀들, 녹아 흘러내리는 눈사람, 몸통을 관통한 기다란 봉을 잡고 있는 중앙의 인물과 이 상황을 감정 없이 바라보는 수많은 인물들은 피로 얼룩진 연옥의 정경을 연상시킨다. 절단된 신체와 가학적 표현의 강도는 높아졌고 부조리와 위선으로 가득한 이 허위의 퍼레이드는 상황의 묘사가 아닌 이중적이고 모호한 감정이란 성질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감정을 드러낼 줄 모르거나 두려움에 경직된 얼굴은 웃음과 불안이 겹쳐진 어색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세 번째 전시 <슬픈 모유>(2014)에서도 성탄절은 등장한다. 구원의 상징이 탄생하는 것과 달리 “고아들의 성탄 2”(2014)에는 창에 꽂힌 희생자들이 화면의 하단을 차지하고 있다. 눈인지 눈물인지 아니면 정액인지 알 수 없는 얼룩들이 트리의 주변을 장식한다. 그것은 찬란한 생명의 탄생이자 버림받는 생명을 동시에 표상한다. “정물 6”(2013)에서는 탐욕스런 17세기 귀족 가정의 식탁이 펼쳐진다. 체리와 포도 같은 과일 사이에 고래가 놓여있고 한편에는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늘어진 풍선 혹은 젖가슴이 시소 끝에 매달려 있다. 리본을 단 소녀의 두상은 짐짓 미소 짓고 있지만 결국 식탁 위에 올라간 제물일 뿐이었다. 

피는 삶과 죽음에 관계한다. 눈물은 기쁨과 슬픔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체액이다. 순영의 회화는 이처럼 생명과 감정에 관한 예술이다. 피는 순결함과 더러움의 상징물이라면, 눈물은 희망과 체념의 분비물이다. 기쁨과 슬픔이 겹겹이 포개있고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은 이러한 상태는 제의를 떠올리게 한다. 제의의 미학은 무엇보다 전유에 있다. 숭고한 죽음이란 연극적 포장, 불순한 것이 순수한 존재로 승화하는 제의의 역설은 바로 비참과 숭고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희화화된 만화풍의 그림에 담긴 잔인함은 폭력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 폭력을 보여주는 미학적 장치에 보다 가깝다. 꼬챙이에 꽂힌 체 형식적인 거짓 미소를 짓고 있는 인물들은 인간의 재현이라기보다 얼어붙은 마음을 재현하고 있다. 흔히 비체(abject)라 불리는 중심에서 탈각된 이 존재들은 순영의 그림 세계 속에서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불멸의 상태로 복권된다. 한편 등장인물들의 부조리한 모습은 사실 동시대 문화적 흐름을 대변하는 ‘움짤’, ‘병맛’과 같은 세대론적 특성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순영의 회화 세계는 오히려 서구중세회화가 보여준 세계관, 양식적 특성, 성과 속, 삶과 죽음, 영원히 회귀하는 기억 등과의 연관성이 더 깊은 듯하다. 중세미술은 근대로 진입하기 전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매개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종교적으로 구원받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많은 악마와 이교의 유혹을 극복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콘은 훌륭한 시각적 재현물이 아닌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체로 발달한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상징을 표준화된 의미를 갖는다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상징은 가부장적인 것이다. 그는 상징과 겨루기 위해 ‘기호’를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의 측면에서 보면, 기호계는 전(前)언어적 단계와 어머니의 신체와 연관되어 있다.”(제이 에멀링, 20세기 현대예술이론) 이것은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말과 행동들, 예를 들어 아이의 옹알이, 배냇짓, 울음 등과 같이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의 행위를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다시 말해 이처럼 해독 불가능한 행위가 의미를 가진 상징 이전에 나타나는 기호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순영은 이미 정해진 의미들을 재현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떠나지 않는 고통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재현한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테바의 관점을 순영 작업에 적용해보면,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 한 비체들의 향연은 이미 의미를 가진 관습적인 사회 구조에 편입되지 않으면서 그것을 와해시킬 수 있는 “재현불가능하고 표현불가능한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볼 수 있겠다. 

 

이번 전시 <눈물의 여정>에도 순영의 그림에는 예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LOVE” 연작(2017) 속 서서히 녹아가는 눈사람, 눈물을 흘리는 미키-마리아, 절단된 소녀와 하혈하던 소녀도 발견할 수 있다. 세계는 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고래가 유영할 바다에는 분홍색 기포가 일렁인다. 폭풍 전야 같던 잿빛 구름은 남태평양의 적란운(積亂雲)으로 바뀌었다. 인물의 표정도 훨씬 밝아졌다. 흑백의 눈송이에도 파스텔톤의 분홍, 밝은 쑥색이 칠해졌고 대지에 쌓인 눈은 달빛을 반사하고 있다. 아래로 기울어진 달은 곧 아침이 밝을 거란 기대를 준다. “고아들의 성탄4,5,6”(2017) 속 아이들은 오순도순 얼음을 지치고 있고 미키-마리아는 날개를 활짝 펼쳐 마치 승리를 표시하는 것만 같다. 순영은 결핍과 폭력에 대한 불안이라는 감정의 상태를 만화풍의 그림으로 전유한다. 비극적 상황은 희극적으로 가려지는데 전유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그러니까 비극이 가려질수록 오히려 불안은 또렷해지는 듯하다. 마치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강박적으로 재등장하고 꿈과 현실이 뒤섞여 성탄절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처럼 말이다. 성공만을 추구하는 시대는 이미 불행을 전제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굳이 최근 한국이 겪은 비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도시가 화려해지고 문명이 자연을 정복하면 할수록 빈곤과 소외가 더욱 더 일상화되는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다. 순영은 사회적으로 재현되지 않고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가상의 존재들을 어둠에 축제에 초대한다. 이곳에 초대된 타자들은 피학적으로 쾌락을 느낌으로서 역설적으로 관습적인 사회 질서의 전복을 일으킨다. 작가는 이처럼 부조리한 비체들의 참혹한 향연을 통해 현실에서 느낀 고통과 분노를 표출한다. 위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지만, 슬픔과 비참함의 재현할 수 없는 고통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섣부른 형식적 공감이 아닌 몸과 마음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감각하려는 의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폭력의 부조리를 재현해야만 하는 작가의 윤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정현(미술비평, 인하대학교)

 

Blood, Sweat, Tear and Endless Last Christmas

"Man could never do without blood, torture, and sacrifices when he felt the need to create a memory for himself; the most dreadful sacrifices and pledges (sacrificing the first baby, etc.) … the most repulsive mutilations (for example, castration) … the cruelest rites of all the religious cults … – all this has its origin in the instinct that realized that pain is the most powerful aid to mnemonics."
- Friedrich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s

In Soon-young’s painting appear quite a large number of figures and a particular place which cannot be specified. There are few cases where specific cases or circumstances are described. Some of the figures have specifically and slightly evolved in her three previous solo exhibitions. It might be fair that a figure wearing a robe like a wing suit resembling Micky Mouse dubbed by the artist as the symbol of salvation is named Micky-Mary. In the background of her paintings falls the snow quite often, sometimes with substitutes for snow, ranging from artificial snow looking around like Christmas tree decorations to cherries. Anybody that has seen these paintings might be easily reminded of Christmas. And yet, you might be disappointed if you expected such magical moments as the birth of Messiah or those that arouse holiness and awe. Her paintings seemingly imbue an implication that they have been partially excerpted from familiar and interesting comics – as if violence expressed in comics mostly seem less violent. However, the more I look into the world and figures she has created, I have started to feel anguish about my life and behaviors because I was reminded of the last drop of tear, which has become a visual signal from my face to boldly bear with suffering as well as of me as the one who had to sacrifice and of me as a victim. There appears no offender in her paintings. The starting point of anguish was due to my thinking that I could be one of the offenders which do not appear in her paintings. Why did Soon-young begin to paint such agonizing and violent paintings? I was also worried about how her world could be explored in a state where it is difficult to discover clues or causality to estimate the source of violence. In order to take a closer step to her paintings, I thought it would be better to look into her previous solo exhibitions. I also wanted her to feel my emotion to approach her closer beyond the artist-critic relationship and wished that she could enjoy the feeling of familiarity and anonymity she could feel by being called by her first name only. That is why I have decided to call her ‘Soon-young’ instead of mentioning her full name. 

Her first solo exhibition titled <Flashback> (2007) was about a girl – a figure with an ego which does not overly responsive to anything, simply having a sullen facial expression. As the title of the exhibition indicates, it was about the girl’s recollection. The girl might be the image of another ego living in her memory instead of  a representation of the artist herself. The girl is a life borne out of the buildup of an ill will which has not been released. While the girl in her first solo exhibition consisted of ‘illustrative’ episodes which were rough and coarse, her second solo exhibition titled <Empty smiles>(2011) depicts a girl as a figure who does not express genuine feelings between the heaven and the purgatory. Let me compare two of her artworks in the exhibition: “Home life”(2009) and “Family”(2010). At the center of “Home life” painted on a vertically long canvas sits a Christmas tree. The tree looks like a substitute of the Garden of Eden, and from the surrounding of the rainbow which rose outside the garden of the heaven where four sides are blocked, one can recognize the facial expressions of figures that eagerly desire for a cut-off corpse and hair which kissed the death. Below the tree is a girl with vaginal bleeding who is wearing a red dress. The setting of “Family”(2010) is also Christmas. From the darkened sky fall round balls which decorate the tree. Girls shedding a tear, snowmen whose snow is melting down, the figure at the center holding a long pole which penetrates into the human body and many others that emotionlessly look at the situation are reminiscent of the bloody purgatory. The intensity of cut-off bodies and sadistic expressions has increased, and the falsified parade replete with irrationalities and hypocrisy leads one to think about the temperament of double-sided and obscure sentiments, instead of a description of a circumstance. The face which does not know how to reveal its emotions, or is rigid with fear, makes one make awkward facial expressions where laughter and anxiety are overlapped. Again in her third exhibition titled <The milk of sorrow>(2014) appears Christmas. In “The Christmas of orphans 2” (2014) unlike the birth of the symbol of salvation, victims hit by spears take up the lower part of the canvas. Unidentifiable smears – eyes, tear or semen – decorate the surroundings of the tree. They symbolize both the birth of a splendid life and a discarded life. In “A still life 6”(2013) appears a kitchen table of a greedy noble family of the 17th century. A whale is placed between such fruits as cherries and grapes, and a sagging balloon or breast which is about to burst out is dangling on the tip of a seesaw. The head of a girl with a ribbon is making a subtle smile but is nothing more than a sacrificial offering put on the table. 

Blood is related to life and death. Tear is an emotional body fluid derived from joy and sadness. Soon-young’s paintings are artworks on life and emotions as such. While blood stands for purity and dirtiness, the tear is the secretion of hopes and despair. The state where joy and sadness are layered on top of each other and life and death are not separated is reminiscent of a robe. The aesthetics of a robe lies in appropriation. The paradox in a robe where solemn death has theatrical packaging and the rebellious being escalated into pure beings lies in the coexistence of misery and solemnness. Therefore, violence in paintings in a caricatured comic is analogous to an aesthetic instrument which does not beautify violence but reveals violence. The figures making a fake smile by being stuck by skewers are the representation of not humans but the frozen mind. These beings which have been removed from the center of being ‘abject’ are reinstated into immortality like the corpses which float around in the world of Soon-young’s paintings. Meanwhile, the irrational image of the figures can be interpreted as the characteristics of the current generation – ‘animated GIF file’ and ‘insanity’ – representing the contemporary cultural trends. And yet, the universe of Soon-young’s paintings seems to be more deeply related to the worldview, stylistic characteristics, the sacred and the profane, life and death and perpetual regression which have been shown by Western medieval paintings. It is said that medieval art was an intermediary connecting human and God prior to entering the modern times. And yet, the process of religious salvation was not easy because one can reach salvation only by overcoming the temptation of many devils and cults. An icon developed into a symbol which conveys certain meanings instead of an excellent visual representation. Kristeva perceived that a symbol has a standardized meaning, so a symbol might be patriarchal in the feministic perspective. He suggests a ‘signifier’ to counter a symbol. According to him, a signifier system is related to the pre-verbal stage and the body of a mother in the perspective of psycho-analysis (Jae Emerling, Theory for Art History). This is why one has to pay attention to words and behaviors which cannot have meanings attached, e.g. the acts prior to learning a language including babbling, sleeping spasm and crying. In other words, these acts which are impossible to decode are the signifiers which appear prior to symbolization with meanings attached. That is why a process of finding meanings came to be necessary, and Soon-young put forth in paintings the process of her understanding the world by going back to the starting point of constant suffering without representing the predefined meanings. If the perspective of Kristeva is applied to works of Soon-young, the festivity of abjections without having their own language could be recognized as ‘an interest in others which is impossible to represent and express’. It is not incorporated into the customary social structure but is capable of breaking it down. 


Figures in the examples appear in Soon-young’s paintings in this exhibition titled <A journey of tears>. There is the snowman slowly melting down which appears in “LOVE” series (2017), Micky-Mary shedding tear, the cut-off girl and the girl with vaginal bleeding. The world has been enriched than before. The sea where a shale is to float around has swaying pink bubbles. The gray cloud being analogous to the night before the storm turns into a cumulonimbus cloud in the South Pacific. Snowflakes in black and white are painted in pastel pink and bright olive, and the snow built up on the land reflects the moonlight. The waning moon hints that the morning will come soon. Children in “The Christmas of orphans 4, 5, 6” (2017) are happily skating on the ice, and Micky-Mary seems to indicate some victory with the wings spreading out wide. Soon-young appropriates the emotional state of anxiety over deficiency and violence in the form of comic-like paintings. Tragic situations are comically hidden, and the higher the intensity in appropriation – the more the tragedy is hidden, the clearer the anxiety becomes. It is like anxiety where an unidentifiable smile obsessively reappears, and the dream and the reality are mixed up to the point where Christmas will not end. The age of pursuing success only is analogous to pre-assume a misfortune. I am not the only one thinking that as a city turns more magnificent and a civilization dominates the nature, poverty and alienation becomes more common, let alone the recent tragedy in Korea. Soon-young invites virtual existences which are not socially represented and cannot express themselves to the festivity of darkness. Others that are invited here feel masochism, paradoxically overturning the customary social order. She as such expresses suffering and anger felt in reality through the devastating festivity of irregular abjections. Consolation might come in words of affection, but it is a process of approaching suffering of sadness and despair which cannot be represented. It is like willingness to sense what the ‘suffering’ of the body and the mind is, instead of formally empathizing with it because such a will is derived from the artist’s ethical mindset of having to represent the irregularities of violence.


Hyun Jung(Art Critic, Inh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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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10, 한지에 채색 Acrylic, color on paper, 50x50cm,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