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 素描

김인겸, 김혜련, 박기원, 정승운

2015. 4. 4 - 5. 17

전시제목 <소묘>는 단어 그대로 ‘素描’이다. <소묘>는 참여 작가 김인겸, 김혜련, 박기원, 정승운이 선택한 제목으로, 드로잉의 통상적 의미를 넘어 그리기(drawing)의 기본에 대한 탐구를 내포하고 있다. 네 명의 작가는 각기 다른 배경, 세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스타일과 테크닉을 구사한다. 그러나 이들은 ‘공간’을 구성적 도구나 작업의 플랫폼 혹은 은유적 개념으로 사용하여 드로잉의 전통적인 개념을 뒤집고 심미적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접근 방식을 공유한다.

빛으로 가득한 갤러리 한 모퉁이에는 두 줄의 실이 걸려 있다. 실을 감싼 굳은 물감층은 은은한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 정승운은 <Skyline>(2015)에서 공간의 구조를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환원시킨다. 갤러리는 여러 개의 선이 가로지르는 새하얀 캔버스로 거듭나고, 공간의 깊이감은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Skyline>을 드로잉으로 간주한다면, 전통적 형태의 드로잉에서는 어긋나 보인다. 정승운은 드로잉의 특징을 회화나 조각과 혼합한다. 작품의 형태는 단일한 구조로 재료가 구축되어 만들어 진다. 물감의 다양한 색들은 서로 섞여 들어, 거의 인상주의적인 방식으로 지나가는 빛의 효과 포착한다. 재료와 중력, 공간과 구조, 노동과 시간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정승운의 작품은 ‘소묘’라는 전시제목의 함축적 의미를 폭넓게 확장시킨다.

정승운과 같이, 박기원 역시 장소 특정성을 통해 드로잉에 접근한다. <Desert>(2015)에서 박기원은 갤러리 2층에 위치한 시멘트 벽에 긴 자와 다양한 색의 분필로 가로, 세로, 사선의 선을 그었다. 작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적막한 “마음의 세계”를 또는 광야의 끝없는 “대지의 세계”를 생각하며, 긴 막대를 자로 사용해서 수직, 수평, 사선을 자유롭게 반복해서 연결했다. 제목에 관해 가끔, 사막 위를 걷고 있는, 아니면 사막위에 던져진 내 모습을 꿈꾼다. 사막의 모습을 기하학적인 구조의 선으로 접근하고 싶었었다. [중략] 예전에는 골목길 벽 위에 꼬마들의 낚서가 많이 있었다. 별다른 의도와 의미 없는 행위의 즐거운 “선의움직임”들이었다. 시멘트 벽 위에 분필[초크]은 그러한 단순한 의도에서 생각했다.

이 같은 작가의 감성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실 <Desert>의 대표적인 특징은 선이 만들어 내는 기하학적인 효과다. 박기원의 자아성찰적이고 수공적인 움직임은 그가 그려내는 정밀한 선으로 압축된다. 투박하게 그려지고 쉽게 지워지는 분필선은 작가가 선택한 육중한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그려지고, 이렇게 축적된 선들이 만들어 내는 깊이와 리듬감, 움직임은 곧 사라져버릴 광활한 지형을 암시하며 작품의 시적인 기원을 드러낸다. 여기서 드로잉은 건축과 공간의 일부가 되어 전시 디자인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던 시멘트 벽에 부드러움을 가미한다. 작가의 감성적인 설명과 작품 속 선, 색, 질감의 정밀한 구성 사이의 괴리는 예술적 영감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연금술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정승운, 박기원과 달리 종이 위에 작업하는 김인겸, 김혜련 작가의 작품은 보다 드로잉의 통상적인 형태에 가깝다. 김인겸의 드로잉 연작 <Space-Less> 중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최근 작품에서 작가는 진한 청색의 잉크로 드로잉 잉크를 사용했는데, 이 작품들은 먹을 이용한 이전의 작품과 대비된다. 그가 전의 작품에서 검정의 먹선을 사용하여 이지적인 우아함을 전달했다면, 푸른 빛의 잉크를 사용하는 최근의 작업은 (한복 등의) 가볍고 섬세한 한국 고유의 텍스쳐나 바다의 헤아릴 수 없는 광활함 등 전혀 다른 느낌을 불러낸다.

김인겸은 직접 만든 고무 재질의 스퀴지를 이용하여 종이 위에 작품을 '그린다(draw)'. 작가는 이 도구를 통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입체 조각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기는데, 스퀴지의 넓은 면적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적인 표현을 낳는다. 이 같은 김인겸의 작업 방식은 노력의 결과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삶을 흥미진진한 것으로 만드는 우연적인 결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한 획의 붓질로 이루어지는 그의 작품은 작가의 생각, 호흡, 움직임이 혼연일체를 이루었을 때 완성된다. 한 번의 유동적인 동작으로 그려지는 반투명한 색면은 서로 겹쳐져서 평면 위에 부피감, 깊이감,공간감을 구축하는 동시에 몸의 떨림과 불가사의하고 광활한 인간의 정신 세계를 드러낸다.

김인겸은 평생 작품을 통해 물리적인 공간과 의식적인 공간 사이를 탐구하는데 몰두해왔고, 이는 특히 <Space-Less>(2007-2010) 연작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입체 작품에서 ‘공간’은 주재료인 스테인리스 스틸 만큼이나 필수적인 요소다. 김인겸은 주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하여 중력을 거부하고 작품이 속한 공간 자체를 강조하는 조각을 구축한다. <소묘>전에서 선보이는 드로잉 작품에서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대신하는 검정과 파랑의 색면으로 평면 위에 빈 공간을 조각하며, 드로잉이 김인겸의 조각 작품과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임을 드러낸다.

<Space-Less>가 ‘묵상적 공간’에 대한 김인겸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혜련의 활력 넘치는 콜라주와 직물 설치작업은 그녀의 주변환경과의 깊은 정서적 교감을 묘사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은 3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祭器)에서부터 올리브 나무, 바다풍경, 그리고 프랑스에서 작가 레지던시 참여 기간 중 그녀의 상상력을 사로 잡은 노르망디의 전경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Olive 1>, <Olive 2>, <Olive 3>(2014)에서는 마치 그을린 오렌지나 감, 머스타드 색같은 생생한 빛깔의 색면 위에 어두운 색의 올리브 조각과 올리브 나뭇가지 형상이 올려져 있다. 이는 마치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보고 난 후 시야에서 떠다니는 점들처럼 보인다. 일견 재현적인 동시에 인상주의적인 작품들은 노르망디 지역의 자연미와 노르망디의 예술적 유산인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전통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다. 하지만 김혜련의 작품이 단순히 시각적 감각만을 포착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 속에 남아 작가의 의식 속에 스며든 정서적인 인상 또한 전달한다. 찢어진 휴지조각이나 마분지 같이 망가지기 쉬운 바탕에 피빛의 붉은 색과 파란색, 빛 바랜 회색 등을 과격하게 물들인 <Collage>(2014)는 노르망디 상륙 전투(1944)가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그로 인해 폭력적 공격과 무수한 사상자를 야기하며 여전히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Quilt>(2013-2014)에서도 작가의 사적인 감성이 드러난다. 한국의 사회적 관습을 상징하는 제기(祭器)의 실루엣은 직물 설치 작품의 의도된 ‘옥의 티’다. 작가는 종이에 위에 먹으로 의도적으로 투박하게 그려낸 제기를 손으로 공들여서 천 위에 바느질하는데, 이 모순적인 과정을 통해 집단과 개인, 관습과 현대성, 가족의 의무와 개인적 갈망 사이의 부조화를 드러낸다.

철사, 나무, 모란, 포도, 독도, 임진강, 바로크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시녀들>(1656)에 등장하는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등, 김혜련의 작품 소재는 다양하다. 나열된 소재들만 놓고 보자면 그녀의 작품은 다소 무작위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품 속 소재들은 작가의 매우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씨름하는 작가의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젠더, 모성애, 지울 수 없는 전쟁의 기억 그리고 남북 분단 같은 정치사회적 이슈와도 미묘하게 연결된다.

얼핏 보기에 연관성이 부족한 네 명의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패기와 열정은 전통과 실험, 절제와 자유분방함, 형식과 상상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네 작가가 본 전시에 함께 참여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예술적 고찰은 ‘드로잉’의 현대적인 개념을 확장시키지만, 이들이 작업의 기본 틀로 ‘소묘’를 택한 것은 작품의 밑거름이 되는 조형의 근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최자윤(도두바(Dodooba) 대표, Art Asia Pacific 한국지부편집장)

The title of the exhibition “Somyo” is the phonetic transcription of the Korean word ‘소묘’ (or 素描), a traditional term for drawing. It reaches beyond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of the term to embrace a wider arena that has to do with investigating the basis of drawing. ‘Somyo’ is also the title chosen by the artists in this exhibition: Kim In Kyum, Heryun Kim, Kiwon Park and Seung Un Chung. The four artists do not belong to a set background, generation, training and represent a wide variety of styles and techniques. Yet they share a common approach where space, used as a compositional tool, platform or metaphoric concept, subverts the traditional notions of drawing to extend its aesthetic possibilities.

Two strands of thread hang in a light filled corner of the gallery. Dried layers of paint cling to the thread forming restrained silhouettes. In Skyline (2015), Seung Un Chung reduces structure to its most elemental form, where the gallery has become a blank canvas intersected by two simple lines, and depth is defin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rk and the viewer.

If Skyline is considered a drawing, then the question with what we see competes with our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the term. In his work, Chung interweaves the characteristics of drawing with painting and sculpture. The morphology of the work is evident in the material tectonics organised into a single structure. The colors of the paint blend together, capturing the passing effects of light in an almost impressionistic manner. The resultant work becomes Chung’s way of expanding the parameters proposed by the title of the exhibition engendered by the interplay between material and gravity, space and structure, labor and time.

Like Chung, Kiwon Park  approaches drawing through the lens of site-specificity. In Desert (2015), Park uses a straightedge to draw horizontal, vertical and diagonal lines with various coloured chalks on a cement wall located on the second floor of the gallery. Park writes in his artist statement:

The work was drawn using a long ruler, spontaneously connecting the repeated perpendicular, level and diagonal lines as I thought about the desolate universe of the soul or the boundlessness of a wild plain… Sometimes I dream of walking across or of watching a figure that is myself stranded on a desert. I wanted to approach the image of the desert with the geometric composition of lines… I used to see a lot of doodles by children in alleyways. These ‘movements of lines’ were the joyous products that came from no specific purpose or meaning. Using chalk on cement began from a similar, simple intention.

Despite Park’s affective explanation, the efficacy of geometry becomes the hallmark of Desert. Park’s introspections and laborious movements are compressed into his precise markings. The impermanence and coarseness of the chalk lines, repeatedly drawn against the enduring mass of Park’s chosen canvas form a sense of depth, rhythm and movement that suggest the expansive and ephemeral terrain expressed in the poetic origins of the work. Drawing here becomes a companion of architecture and space, imparting a tenderness onto an architectural element that could have been a hindrance to the exhibition’s design. The discrepancy between Park’s explanation and his meticulous application of lines, colour and texture only underscores the alchemic process that begins from artistic thought to result in the final product.

Unlike Chung and Park, Kim In Kyum and Heryun Kim’s works are closer to the literal interpretations of drawing in that their works take the form of works on paper. In the collection of recent works from Kim In Kyum’s ongoing drawing series “Space-Less”  shown in “Somyo”,  ribbons of ink are laid out in Prussian blue with some bearing darker hints of black. They are a departure from his earlier works on paper drawn with Korean ink. If the black pigment conveys a cerebral elegance in Kim’s earlier works, the recent experiments with blue ink summon a wholly different spectrum of references, at times the ethereal delicacy of traditional Korean textile (hanbok) and others, the unfathomable expanse of the sea.

Kim uses a handmade rubber squeegee to ‘draw’ his works on paper. With his ‘brush’, Kim transfers the three-dimensional sculptures (for which he is best known) onto the two-dimensional plane. The wide proportions of the squeegee impose an element of coincidence. Kim’s technique minimises the foibles of the human condition to control the outcomes of our efforts and glorifies the serendipitous results that make life so enthralling. The works, which must be achieved in one continuous stroke, are created when Kim’s thoughts, breath, and motion are in complete union. In a single fluid gesture, Kim composes overlapping translucent colour planes that create a sense of volume, depth and space. They also reveal the vibrations of the human body and the enigmatic expanse of the human mind.

The works attest to Kim’s lifelong dedication to the exploration of physical versus cerebral space and recall the sculptural series also titled “Space-less”,  In the three-dimensional works, space is as integral as the stainless steel Kim prefers to use, serving as building blocks for constructing works that simultaneously defy gravity and activate space. In the two-dimensional works, it is the dichromatic planes of blue and black ink that replace the stainless steel and dissect negative space, presenting drawing as a wholly independent art form intrinsically linked to Kim’s sculptural practice.

If “Space-less” testifies to Kim In Kyum’s ongoing interest in ‘contemplative space’, the exuberant collages and textile installations by Heryun Kim portray a deep emotive connection to her surroundings. The works in the exhibition were made over the past three years and their subject matters range from vessels used in ancestral rites to the olive trees, seascapes, and views of Normandy that caught Heryun Kim’s imagination during an artist residency in France.

Olive 1, Olive 2 and Olive 3 (2014), dark cut-outs of olives and their branches are placed on top of vibrant hues of burnt orange, persimmon and mustard. They come into sight like the floating spots that appear after staring into a glaring sun. At once figurative and impressionistic, the works pay homage to the natural beauty of the region and the traditions of Romanticism and Impressionism that shaped Normandy’s artistic heritage. Her works, however, do not just capture the visible sensations of her observations; they also convey the emotional impressions that linger in physical space and impregnate her consciousness. The violent applications of crimsons, blues and washes of grey on the fragile support constructed from torn tissue paper and cardboard in Collage  (2014) evoke the violent assault and innumerable casualties, albeit ultimate victory, that resulted from the Invasion of Normandy (1944) and its unremitting affect on the region.

An intimate sensibility also manifests in Drawing Quilt (2013-14). Silhouettes of vessels used in Korean ancestral worship, a symbol of Korean social order, blemish the textile installation. The deliberate haphazard representations in ink on paper painstakingly hand-stitched onto fabric disclose the incongruity between the collective and individual, custom and modernity, familial duty and personal desire.

The subjects of Kim’s oeuvre have included barbed wires, trees, peonies, grapes, Princess Margaret Theresa from Baroque painter Diego Velazquez’ (1599-1660) Las Meninas (1656), Dokdo (island) and the Imjingang (river). Taking into account the present selection, the subjects of her works can be seemingly random. But in fact they are intensely biographical, all the while subtly incorporating issues related to gender, motherhood, the indelible memories of war, and socio-political issues such the division of Korea through her ceaseless negotiation of the complex amalgam that constitutes human emotions.

The shared indefatigable spirit of the four loosely connected artists traverse the boundaries between tradition and experimentation, restraint and indulgence, form and imagination. This is what may have led them to come together for this exhibition. Their evolving deliberations also expand the modern definition of drawing. Yet it is their chosen framework—somyo—that underscores their reverence for the fundamental elements that continue to shape their practice.

Jayoon Choi(Founder of Dodooba and South Korea Desk Editor of Art Asia 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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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겸, 스페이스리스 Space-Less, Ink on paper, 109×79cm,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