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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오용석, 전정은, 정우철

2009. 11. 6 - 11. 30

현대 미술에서 회화와 사진은 가시적 풍경의 또는 역사적 이야기의 재현이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벗고 추상적인 것에 관심을 둔 지 오래다. 여기 세 작가는 가공된 하나의 진실로써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가면 뒤의 풍경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 이미지들은 실재를 바탕으로 작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많은 차이를 보이며 동시에 어떠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이는 단순히 이미지 표면의 문제가 아닌 그 풍경이 기인하는 그리고 숨겨지거나 은폐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여기 존재하는 풍경들은 타인에 의하여 취사선택되고 정의된 면 이외의 다른 모습들로써 그 자체가 다중적 의미를 품은 것들이고 또한 임의로 배제된 풍경이기도 하다.

오용석 작가의 작업에는 과거의 '현장-풍경'에 기록된 흔적들이나 정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이미지들이 그려지고 지워지는 반복적 행위가 존재한다. 


작가에 의해 수집된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시점으로 한 화면에 존재하고, 이러한 다시점의 이미지들은 어떠한 사건의 파편들로써 단일시점인 대중매체와는 확연하게 다른, 작가의 다층적인 시점들을 드러낸다. 작가는 과거 '사건'의 기록을 쫓고 있지만 수집되고 그려지고 지워지는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종결될 수 없는 사건이나 언제나 열려있는 현재형 또는 미래형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사건의 가능성이라는 불완전함에서 오는 정서적 불안, 공포의 징후는 사건 발생의 여부와 상관없이 보는 이에게 불안정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파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는 현실의 균열을 지시함과 동시에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또한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망각에 대해 조용히 경고한다.

전정은 작가의 작업은 물질만능주의와 인간우월주의의 폐해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욕망이 들끓었던 흔적인 부서지고 정신없이 헝클어진 실내의 공간과 창밖으로 보이는 청량한 자연의 모습이 한 화면에 배치된다. 


작가는 이렇듯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양 끝단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병치시키고, 그 두 이미지는 강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담긴 풍경이라는 것에 대해 생경한 틈을 만든다. 이 틈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싶은 부분일지도 모르고 간과하고 있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이 틈 안에서 작가는 자연을 파괴하고 다시 자연을 품에 두고 싶어 하는 모순된 인간 심리_작가 曰_를 표출시킨다. 

정우철 작가의 작품 안에는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다세대 주택들이 마치 블록을 끼워 맞춘 듯 존재한다. 서울 안, 작가가 직접 수집한 '다세대 주택'이라는 모듈은 작가의 임의대로 조립되어 있으며 평면 투시로 표현되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또한 그의 이미지는 장난감처럼 희화적이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매우 냉소적인데 이는 사실 도시민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브랜드 아파트를 강요하는 매체는 이에 열광하는 소비자와 함께 많은 도시민들이 거주하는 다세대 주택이라는 또 다른 현실을 외면하고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것이 옳은 것처럼 느끼게 한다. 매체 속 환상과, 실재 사이의 괴리의 정도는 정우철 작가의 작품이 갖는 익살스러움이나 냉소적 태도와 분명 비례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갤러리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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