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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無道
 
배종헌
더 소소
2025. 5. 2 - 6. 13

 

무도(無道)에서 찾은 새로운 길

 

박이정 (갤러리 소소)​

 

 

    배종헌 작가는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존재들, 이를테면 골목의 콘크리트 벽이나 시멘트 자국, 조각상의 표면에서 자연의 형상을 찾아내고 이를 회화로 풀어낸다. 2023년 개인전 《무행 無行》(갤러리 소소)에서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럼에도 그곳에 있는 상태’를 주제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산업 잔재 속에서 자연을 읽어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무행 無行》과의 연장선에 있는 이번 개인전 《무도 無道》에서 그는 ‘길이 없음’, ‘도리에 어긋남’을 주제로 자본주의 사회와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무용(無用)과 유용(有用)에 대해 사유할 기회의 장을 마련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 관심을 두지 않았던 벽의 생채기 자국, 화려함의 이면과 같이 부수적인 것들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보여준다. 일차적으로 그는 시멘트와 콘크리트라는 인공적 물질 위에 나타나는 자연의 풍경을 회화로 담아낸다. 인공물에서 자연을 포착하는 그의 방식은 역설적으로 다시금 못과 시멘트 같은 산업 재료를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으로 확장되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인공과 자연, 문명과 비문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한다. 배종헌 작가의 작업 방식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늘 공존해 온 자연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가 재료로서 외면해 온 '무용'의 모습을 정면으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시선의 전환과 가치 판단을 둘러싼 작가의 비판적 태도는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비너스의 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이상적 아름다움과 고대 그리스 미술을 대표하는 〈밀로의 비너스〉는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연신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조각상의 앞모습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작가는 카메라와 관람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비너스의 뒷모습을 조명하며, 무용하거나 관심 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드러낸다. 비너스의 앞모습이 미술관과 미술 작품의 권위와 규범의 상징이라면 그 등은 말 그대로 이면이자 무용한 부분이다. 그러나 작가는 비너스의 등에서 자연을 찾고, 이를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무용성의 뒷면에 가려진 또 다른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전환하며,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되묻는다. 이러한 태도는 시선의 권력 구조를 비판하는 동시에, 무엇이 가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문화적 기준을 되짚는다. 결국, 배종헌 작가는 《무도 無道》를 통해 그동안 비가시적이었던 것들, 소외되고 잊힌 것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시선의 권력, 익숙함의 감각, 가치의 위계를 재고한다. 우리가 ‘길’이라 믿었던 것, ‘중요한 것’이라 여겼던 것의 이면과 주변, 자국과 흔적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고, 길을 잃은 상태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길 위에서, 그는 낯설지만 의미 있는 풍경을 화면 위에 펼쳐 보이며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무도한 시대—길을 잃어버린 듯한 세상—속에서도 여전히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 가능성을 상상하고 제시한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92 갤러리 소소

​T. 031-949-8154 E. sosogalle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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