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담

윤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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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순례자의 공감각적 내향(內向)

하계훈(미술평론가)

몇 해 전 나는 윤정선의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작가를 ‘이미지의 순례자’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때까지 실제로 윤정선은 이러한 표현에 걸맞게 자신의 화가로서의 활동 궤적을 순례자의 일기처럼 작품 속에 담아왔다. 이제까지 윤정선의 작품 안에는 유학시절의 런던 시내 풍경과 북경의 자금성, 귀국 후에 둥지를 튼 작업실과 집 근처의 표정, 그리고 국내에서 작가가 이미지 사냥을 하듯 찾아 나섰던 명동의 가톨릭 사제관과 북촌의 한옥마을 등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장소에서 작가는 개인적 경험과 정서에 공명(共鳴)하는 모티브와 이미지를 사실주의적 재현에 입각하여 유화와 아크릴로 묘사해왔다. 윤정선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공감은 작가의 작품에 풍부한 서사와 상상을 부여해줄 수 있었고, 작가 자신도 어느새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는 단계에서 점차 대상의 서사를 읽어내고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미지2
이번에 윤정선이 찾아낸 소재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이 고즈넉하게 둥지를 틀고 있었던 동네의 풍경이다. 종로 3가 지하철역 근처 뒷길로 들어서면 한 블록 정도 면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오래된 한옥들이 인근의 고층빌딩들 사이로 오고가는 사람들과 차들이 빚어내는 도심의 부산스러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나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나타난다. 오랫동안 이 동네의 앞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최근에 재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보존으로 정책이 확정된 종로구 익선동이다. 보존 정책이 발표된 이후로 한옥의 외형을 보존한 채 급속하게 카페와 상점으로 변신해가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윤정선은 오히려 어린 시절의 골목길의 아련한 모습을 발견한다.
오후의 햇볕이 비스듬히 내려쬐는 좁은 골목의 담들은 1930년대에 조성된 한옥마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중장년층에게는 어린 시절에 그곳에서 뛰어놀며 웃고 떠들다가 때로는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 저녁밥을 챙겨 먹이려는 엄마의 호출로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던 골목길의 추억을 불러일으켜준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그들에게는 낮선 공간이 불러일으켜주는 야릇한 호기심과 함께 그 낮고 좁은 공간이 주는 아늑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이미지3
이번에 윤정선이 담아낸 풍경은 거대도시 서울의 뒷길에서 마주친 이곳 골목의 담벼락들이다. 원래 벽은 공간의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경계지점에 말뚝을 박고 벽돌이나 흙을 쌓아놓은 구조로서 보통 그 위에는 지붕이 얹히게 되는 건축물의 한 부분이다. 나라마다 벽을 뜻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벽을 통해서 분리되는 공간의 내부와 외부에 접하는 각각의 벽의 명칭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어나 스페인어에서는 내벽과 외벽의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가 별도로 존재한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중립적인 성격의 용어로서 ‘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여기에 ‘외(外)’나 ‘내(內)’라는 수식을 덧붙여서 벽의 위치를 필요에 따라 좀 더 자세히 지정해주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에 윤정선이 익선동에서 마주치는 벽들은 외벽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외벽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는데 비하여 내벽은 공간 점유자의 의지에 의해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낯선 방문자로서 개인의 사적 공간의 내벽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작가는 외벽의 표정을 담아내고 있지만, 벽의 저편을 둘러볼 수 없는 입장에서 이 벽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내벽보다 더 사적인 추억과 경험을 불러일으켜주는 공간일 수 있으며 오히려 벽의 저편에 있는 내벽이 낯선 타자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공간의 경계를 지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벽이기에 이 벽에 뚫린 작은 창과 그 위에 덧씌워진 격자무늬의 창살은 방어와 소통을 함께 의미하는 흥미로운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러한 벽들의 표정을 마주하는 작가의 시선을 담아낸 까닭에 화면의 평면성이 두드러지며 색채의 변화도 드문 편이다. 따라서 감상자의 취향이나 경험에 따라서는 이러한 작품들이 주는 시각적 자극이 약하게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이러한 점에 있기보다는 벽을 마주하는 작가가 관람자들과 시각을 넘어서는 공감각적 대화를 통해 공간의 의미와 존재에 대한 사유, 추억과 정서의 교감 등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윤정선의 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할 수 있다. 작가는 벽에 붙여놓은 타일과 벽돌의 미묘한 표정이나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금이 간 모습, 그리고 불법 게시물이 할퀴고 간 흔적 같은 테이프 자국 등의 디테일에서 이 골목의 지나온 삶을 상상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공간이 박제화된 풍경이 아니라는 것은 화면의 귀퉁이에 살짝 휘날리는 치맛자락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함께 출품된 타원형의 캔버스에 담긴 꽃무늬 작품들은 작가가 용도변경을 위해 수리중인 익선동 주택의 내부에서 포착한 벽지의 무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들이다. 이미지4
이번 작품들을 통해 윤정선은 자신이 이제까지 일관되게 추구해 온 이미지의 순례 과정을 심화시켜가는 작업을 보여준다. 작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적 표정을 읽는 순례의 비중을 줄여가면서 보다 더 공간의 내부와 그 공간의 추억과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사유적 순례에 비중을 높여가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공감각적 내향 작업의 궤적은 필연적으로 대상과 작가의 시선과 거리의 변화라든가 화면에 담겨지는 이미지에 있어서 재현과 추상의 비중의 조절이 수반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윤정선의 작품을 따라가며 읽는 관람자들에게도 감상의 방법과 사유적 공감의 태도가 점진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윤정선이 바라보는 이미지의 순례에서 앞으로 작가의 시선과 사유가 어떻게 변화해 나아갈 것인지 기대된다.

 


Ha Kye-Hoon (art critic)
Upon discussing the works of Yoon Jeong Sun several years ago, I happened to dub her as ‘a pilgrim of images’. In fact, Yoon had included the trajectory of her activities as an artist into artworks as in a diary of a pilgrimage, befitting the expression. Included in her works have been the following: a cityscape of London and the Forbidden City in Beijing as she studied abroad; her studio set up after she returned home and the surroundings of her house; Catholic Priests’ House in Myeongdong and Bukchon Hanok Village which she went out to capture of as if an artist would hunt for images in Korea.
In these places, Yoon has described the motifs and images resonating in her experiences and emotions using oil paintings and acrylic based on realistic representation. Yoon’s empathy towards objects she sees could imbue abundant narratives and imagination in her works. She once mentioned that she was taking a closer step to a process of interpreting the narratives in objects and emotionally sharing them with others upon looking back on her experiences.
The object Yoon has discovered this time is a scene of her neighborhood which has quietly positioned itself at the center of Seoul as if to forget about the flow of time. There are old traditional houses clustered together in an area worth a bloc behind the subway station of Jongno 3-ga. They serenely and aloofly sit there, seemingly not caring about the bustling city life created by busy people and cars coming in and out of high-rise buildings nearby. They are in Ikseon-dong in Jongno-gu, which has been confirmed by the conservation policy despite controversies about the future directions of the neighborhood to go for redevelopment or conservation. After the conservation policy was announced, coffee shops and stores have rapidly filled in the area, which preserve their appearance of the traditional houses. And yet, Yoon came to observe a hazy scene in her childhood memory.
The walls in narrow street corners getting the oblique sun¬light in the afternoon have maintained the appearance of Korean traditional village formed in the 1930s, imbuing nostalgia to the middle aged and older on their childhood memories: the memories of the street corners where they used round around, laugh, chit chat and sometimes fight with friend and where little kids went home one after another upon hearing their mom calling them in for dinner during sunset. For young generations, albeit hitting no memories as such, the places let them feel a cozy sense of comfort as well as subtle curiosity imbued by unfamiliar places.
The landscape depicted by Yoon this time is fences or walls in street corners which are come across behind the mega cityscape of Seoul. A wall is a part of an architectural structure where a roof sits on top as a structure where bricks or earth are accumulated after piling work on boundaries to distinguish different places in a space. Countries have their own way of calling a wall, but intriguingly enough, in many cases, different names are applied to each wall attached to the interior and exterior of a space, which is separated by the wall. For instance, there are different words for the inner and external walls in German and Spanish. In Korea, by contrast, a wall is a neutral term, and so such descriptors as ‘external’ or ‘inner’ are applied to the term to specify the location of a wall based on the needs.
In this sense, the walls confronted by Yoon at Ikseon-dong are external walls. While external walls are publicly exposed, internal ones are revealed in a limited way driven by the will of the space occupants. Since there are rare opportunities to look into the inner walls of a personal space as strangers, external walls – in the perspective of Yoon – could be a space to arouse personal memories and experiences compared to the inner ones since what is going on beyond the external ones cannot be seen; and rather, the inner walls beyond the external ones could be the space of strangers. Walls play the role of designating spatial bound¬aries, so small windows on such walls and the window frame of cross stripes could become interesting points to communicate message of defense and communication.
Most of the works exhibited this time carry Yoon’s perspective of looking at expressions of such walls, thus explicitly revealing the flatness of the screen and rarely showing changes in colors. Therefore, visual stimulation conveyed by the artworks might be little depending on the preference and experiences of viewers. And yet, the artist’s intent is somewhere else: she seeks to communicate on reasoning, memories and emotions of spatial meanings and existence through synesthetic conversations beyond the views of the artist and viewers confronting the walls. Given her intent as such, the story told by Yoon’s works could be more diverse and enriching than thought. Yoon intends to imagine the life underwent by the street corner, based on such details as the remains of sticky tapes used for illegally attached posters as well as subtlety in the expressions of the tiles and bricks on the walls and their cracks due to the passage of time. That this space is not a mounted scene can be witnessed by the gently swirling skirt on the corner of the screen. Flower-patterned works on an oval-shaped canvas submitted together are the ones based on a motif from the patterns on the walls she depicted inside a house in Ikseon-dong being in the middle of repair to change its usage.
Through these works, Yoon shows how she intensifies a process of pilgrimage on images she has consistently pursued up to now. She has introduced works where the portion of contemplative pilgrimage is increasing, which focuses on the inner space, its memories and history even more, while reducing that of the pilgrimage of interpret¬ing spatial expressions throughout the course in time. The trajectory of the synesthetic introversion might accompany changes in the distance between an object and Yoon’s eyes or adjustment of the portion of representation and abstractness in images portrayed. Even viewers who interpret Yoon’s works would have to have their modality of appreciation and attitude of contemplatively empathizing with the works gradually changed. Therefore, it would be worthwhile to expect how her views and reasoning would change in her way of involving in a pilgrimage on images.